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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대신 '위키피디아'의 시대…사라지는 사전편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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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대신 '위키피디아'의 시대…사라지는 사전편찬자들

신간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졸업·입학선물로 국어사전이나 옥편(한자사전), 영한사전 같은 사전이 빠지지 않던 때가 있었다. '프라임'이니 '에센스'니 하는 영어사전 브랜드들이 경쟁했고 좀 산다 하는 집에는 벽돌처럼 무거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트가 필수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종이사전 대신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에 접속한다. 많은 이들은 이제 백과사전 하면 '브리태니커' 대신 '위키피디아'를 먼저 떠올린다. 종이사전을 찾는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사전 출판사들은 문을 닫았고 사전 편찬자들은 하나둘씩 맥이 끊기고 있다. 이제 국내의 거의 모든 사전은 20년 가까이 개정되지 않고 있다.

신간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사계절 펴냄)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어학사전 기획자인 정철이 사전 편찬 현장에서 활동했고 활동 중인 사람들을 만나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사전 편찬자들의 세계를 기록한 책이다.

전작 '검색, 사전을 삼키다'에서 몰락하는 종이사전의 현실을 지적했던 저자는 한국어사전과 백과사전, 외국어 사전을 편찬했던 사전 편찬자 5명을 직접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고스란히 우리 사전의 역사가 담겨있다.

20여 년간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 작업에 참여했고 지금은 남북합작사전인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주도하는 조재우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장은 어학사전 편찬의 기초 지식과 한글 맞춤법·표준어가 정착해온 역사, 시기별 대표 사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원작 제목은 '모밀꽃 필 무렵'이었음을 예로 들면서 우리 사전이 단어 하나에 담긴 역사적, 문학적 발자취를 온전히 담지 못했고 표준어를 중심으로 뜻풀이를 해주는 수준에 그쳤다는 아쉬움을 전한다.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장경식 대표는 백과사전의 대표격이었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이야기를 전해준다. 1987년 기획돼 1994년 완간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판이 단순히 영문판을 번역하는 차원이 아니라 왜곡된 한국 관련 항목을 바로잡으며 한국의 입장에서 쓴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브리태니커 한국판에 많을 때는 180명의 편집자가 있었고 브리태니커 한국어판을 출간한 고(故) 한창기 뿌리 깊은 나무 발행인을 통해 월부 책장수 위주였던 방문판매 시장에 외국의 방문판매 기법이 도입됐고 이후 화장품, 정수기, 보험, 자동차 등 여러 업계로 퍼져나갔다는 이야기 등이 흥미롭다.

우리 출판계 초창기에 만연했던 일본 책 중역은 사전 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국어 사전의 경우 특히 대다수가 여러 종의 일본사전을 번역하고 짜깁기한 것이었다. 금성출판사와 민중서림 편집부장을 지낸 김정남 씨는 당시 사전 편찬자들이 어느 정도로 어떻게 일본 사전을 참조했는지 등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저자가 사전계의 스승들과 주고받는 대화 속에는 우리 사전계의 현실이 드러난다. 포털이 서비스하는 영한사전의 경우 현재 네이버에서는 '옥스퍼드 학습자 영어 사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고, 다음에서는 일본 사전의 영향을 받은 금성출판사의 그랜드 영한사전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일사전 번역에서 영영사전 번역으로 바뀌었을 뿐 우리의 언어에 맞는 영어사전을 개발하지 못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립국어원이 1999년 '표준'을 내세운 표준국어대사전'을 발간하며 그동안 개발됐던 여러 민간 국어사전들이 '비표준'이 돼버렸고 그 결과 현재는 고려대와 연세대가 만든 한국어 사전만 남았다. 또 사전 출판사들이 어학사전 하나를 만드는데 15억∼20억원을 투자했지만 포털사이트는 어학사전의 내용을 갱신하는 데는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저자는 "사전편찬에 관한 경험과 기억이 이미 많이 지워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져 가고 있다"면서 "사전도, 사전 편찬자도 어느새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됐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356쪽. 1만6천원.

zitro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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