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이 사랑한 시 82편…"시도 좀 읽으면서 살 일"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한 편의 좋은 시는 우리들 마음에 낀 녹을 닦아내고 맑은 눈을 열게 한다. 이 팍팍하고 막막한 세상에서 무엇에 쫓기지만 말고 영혼의 음악인 시도 좀 읽으면서 운치 있게 살아갈 일이다."(법정스님 산문집 '산방한담' 中에서)
법정(1932∼2010) 스님의 입적 7주기를 맞아 법정 스님이 평소 아꼈던 선시(禪詩) 82편을 엮은 시집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서 갔네'가 나왔다.
의상, 효봉, 휴정 등 25명의 승려를 비롯해 왕유, 김소월 등 중국과 한국의 시인들의 담백한 시구가 담겼다.
"천하의 도성은 개미집이요/ 고금의 호걸들도 초파리여라/ 창에 가득한 달빛 베고 누웠으니/ 끝없는 솔바람 소리 고르지 않네"(휴정 선사)
임진왜란 때 세수 72세의 노구를 이끌고 승병을 일으켰던 휴정(休靜·1520∼1604) 선사가 남긴 이 시는 전쟁의 한복판을 헤쳐온 당대의 지식인이 세속의 덧없음을 읊은 것이라 더욱 울림이 깊다.
"보았네 못 보았네 떠들지 말고/ 그대도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 손님 접대는 다만 이것뿐/ 절집엔 원래 잔정 따윈 없다네"(작자 미상)
작자 미상의 시 열다섯 편도 소개됐다. 시 한 편 던져두고 돌아서 이름없이 표표히 떠나버린 이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법정 스님은 '산방한담'에서 "정치인과 경제인의 입에서 시가 외워지고 공무원이나 사무원들의 메모지에 몇 줄의 시가 적히며, 주부들의 장바구니에도 싱그러운 봄나물과 함께 산뜻한 시집이 들어 있다면, 그래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라도 그걸 펼쳐 들고 낮은 목소리로 읽는다면…"이라고 시가 촉촉한 봄비처럼 온 누리를 적시는 세상을 꿈꿨다.
이어 "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물기가 돌고 아름답고 정다워질 것"이라고 바랐다.
책읽는섬. 131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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