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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터미널 등 우리를 머슴 취급"…트레일러 기사들 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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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터미널 등 우리를 머슴 취급"…트레일러 기사들 하소연

컨테이너 내부 청소 떠넘기는 등 횡포…터미널도 몇시간씩 발 묶어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컨테이너를 수송하는 트레일러 기사들은 우리나라 물류망의 '실핏줄' 같은 존재이지만 어디에서도 합당한 대우는 고사하고 '머슴 취급'을 당한다고 하소연한다.

트레일러 기사들은 부두에 내린 수입화물이나 빈 컨테이너를 국내 화주에게 가져다주고 수출화물이 든 컨테이너를 터미널로 실어나른다.

우리나라 대표 항만인 부산항에서 연간 처리하는 컨테이너는 20피트(약 6m)짜리 기준으로 2천만개에 가깝다.

절반가량은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입 화물이고 나머지는 부산에서 배를 바꿔 제3국으로 가는 다른 나라의 환적화물이다.

기사들은 근무시간과 환경에 비해 적은 수입도 문제지만 선사, 컨테이너 터미널, 화주들의 또 다른 '갑질 횡포'가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입을 모은다.

30년째 트레일러를 모는 60대 초반의 A씨는 2일 "한마디로 표현하면 선사, 터미널, 화주들이 우리를 머슴 취급한다"고 말했다.

수출입 컨테이너를 수송하는 트레일러 기사는 빗자루와 걸레,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항상 차에 갖고 다닌다.




화주에게 가져다줄 빈 컨테이너를 청소하고 간단한 수리를 직접 하기 위해서다.

부산항 곳곳에서 기사들이 빈 컨테이너를 열어놓고 내부를 쓸고 닦고 스프레이 페인트를 녹슨 부분에 뿌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미리 열어서 점검하지 않고 가져다준 컨테이너 내부에 녹이 슬거나 지저분하면 화주가 인수를 거부해 터미널로 되가져와야 한다.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 등 비용은 물론이고 하루 수입 대부분을 날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지간한 수리와 청소를 직접 할 수밖에 없다고 기사들은 말했다.

기사들은 "우리 임무는 선사가 의뢰한 컨테이너를 화주에게 실어주는 것으로 끝나야 마땅하다"며 "이를 위해선 선사와 터미널이 깨끗한 컨테이너를 실어줄 책임이 있지만 기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사들은 찌그러지고 구멍이 났거나 청소가 안 된 컨테이너 때문에 부두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밝혔다.

배정받은 컨테이너의 상태가 화주에게 가져다주지 못할 만큼 나쁘면 터미널 안에 있는 선사의 수리 장소로 옮겨주고 다시 줄을 서서 다른 컨테이너를 배정받아 싣는데 한번 교환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린다.

이런 일을 3번 이상 연거푸 당해 터미널 안에서 5시간 넘게 발이 묶여 하루 일을 망치는 때도 있다고 기사들은 전했다.

한 기사는 "택시는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도 요금을 받는데 우리는 몇 시간씩 허비하는 데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짜로 수리장까지 실어주어야 하는 것은 정말 부당하다"고 말했다.




기사들의 항의를 받는 터미널 운영사들도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한 터미널 관계자는 "컨테이너는 선사 소유"라며 "선사가 제대로 검사해서 문제가 있는 것을 가려내거나 터미널에 비용을 주고 그 일을 맡겨야 해결되는 데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후 5~6시가 넘으면 빈 컨테이너를 반납하지 못해 장거리 운송을 갔다가 시간을 맞추지 못한 기사들은 터미널 부근 공터 등지에서 밤을 새우거나 다른 화물 수송을 위해 자기 돈을 들여 다른 기사에게 반납을 맡기는 일도 벌어진다.

기사들은 "외국 항만은 대부분 24시간 반납을 허용하는데 부산은 선사들이 비용 때문에 야간반납을 못하게 막는 것으로 안다"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기사들의 불편은 안중에도 없다"고 성토했다.

기사들은 터미널 운영사에도 불만이 많다.

선박이 접안해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본선 작업을 하는 날이면 그쪽에 장비가 집중되는 바람에 트레일러들은 장치장에서 1~2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식사를 거르는 것은 물론이고 장치장 안에 쉴만한 장소도 없어 꼼짝없이 차 안에서 기름을 소모해 가면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정말 짜증 나고 고통스럽다고 기사들은 토로했다.




부산항만공사가 트레일러 기사들과 소통하고자 운영하는 'BPA와 행복트럭' 밴드에는 '1시간 넘게 대기하고 있는데 컨테이너를 실어줄 생각을 안 한다'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기사들은 "운영사들이 비용을 줄이려고 최소한의 장비만 운영하면서 기사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터미널은 컨테이너에 붙어 있는 위험물 스티커 제거까지 기사들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사와 터미널뿐 아니라 화주업체들의 횡포도 만만치 않다고 기사들은 말했다.

기사 B씨는 "컨테이너를 싣고 가면 화주업체의 직원이 직접 문을 열지 않고 기사에게 차에서 내려 열라고 지시하고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온갖 트집을 잡아 별문제 없는 컨테이너를 돌려보내기도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어떤 업체는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에 대해서는 자기 업체 화물 수송에서 배제하라고 운송사에 요구하는 일까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기사들은 "우리 경제와 부산 등 주요 항만의 발전에는 트레일러 기사들의 피땀이 뒷받침됐다"며 "물량이 늘면 그곳에서 일하는 우리 같은 힘없는 사람들의 삶이 나아져야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lyh9502@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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