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업 진출 60돌…선원들 희생·노고 기리고 재도약 다짐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미국 원조자금으로 마련한 중고선 1척으로 시작한 우리나라의 원양어업이 29일로 6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경제발전의 초석을 놓은 원양어업 종사자들의 희생과 노고를 기리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다양한 행사가 첫 출항지인 부산에서 열렸다.
60년 전 이날 부산항 1부두에서 첫 원양어선 지남호가 수많은 인파의 환송을 받으며 인도양으로 참치 시험조업을 위해 출항했다.
해양수산부는 이날 오전 10시 영도구 동삼동 국립해양박물관에서 김영춘 장관, 지남호 첫 출항 당시 어업지도관으로 승선했던 이제호 전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원 등 원양어업을 개척한 업계 원로 등이 참석한 가운데 6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김 장관은 축사에서 "우리 경제발전의 디딤돌을 놓은 애국자인 원양 어선원들의 개척 정신을 기리고 앞으로 원양산업이 우리나라를 해양강국으로 이끄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물관 잔디밭에 설치한 기념조형물 제막식도 열렸다.
높이 3m, 너비 3.5m의 주 조형물은 바다를 누비는 원양어선과 힘차게 도약하는 참치가 태양을 품은 형상으로 원양어업인의 개척 정신을 상징한다.
높이 95㎝, 너비 1.4m의 기념비에는 지남호 출항식 사진과 원양어업의 역사적 의미를 새겼다.
기념식에 이어 박물관 1층 다목적 홀에서는 원양어업 진출 60주년 기념 전시회인 '먼바다, 만선의 꿈'이 개막했다.
9월 17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에서는 1957년 지남호 인도양 시험조업 출항 당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 선원수첩과 항해 도구, 선상일지 등 당시 선원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선보였다.
지남호를 20분의 1로 축소해 복원한 모형 선박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립수산과학원은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원양어업 진출 6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열어 한국 원양어업 현황을 점검하고 새로운 도약 방안 등을 논의했다.
선원 등 27명을 태우고 인도양을 향해 부산을 떠난 지남호는 도중에 기름이 떨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그해 광복절 아침 니코발아일랜드 해역에서 0.5t의 참치를 잡는 데 성공해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서막을 열었다.
1962년부터 시작된 계획조선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은 원양어업은 어선을 850척(1977년), 해외기지를 28곳(1990년)으로 늘려 원양강국으로 발전했다.
1960~70년대 원양업계가 벌어들인 외화는 약 20억 달러에 달했고 수출액은 당시 우리나라 전체의 5%를 차지하는 등 경제발전의 초석이 됐다.
이역만리 원양에서 거친 파도와 싸우며 외화를 벌어들이는 과정에서 많은 선원이 순직했다.
스페인 라스팔마스(104기)와 사모아(89기) 등 8곳의 원양 선원 묘지에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301명의 유해가 묻혀 있다.
60주년을 맞은 현재 한국의 원양어업은 활력을 잃고 존립기반마저 위협받고 있다.
해외어장 축소와 수산자원의 감소 탓에 생산량은 1992년 100만t에서 2016년 45만t으로 줄었고 전체 어업생산량에서 원양어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32%에서 14%로 떨어졌다.
경영난을 겪던 업체들의 도산이 잇따라 2002년 131개이던 원양업체가 2015년에는 67개로 줄었다.
선원 이직률 증가와 재승선 기피 현상이 심해져 내국인 선원 수는 점차 감소하고 그 자리를 외국인 선원이 대신하고 있다.
선원의 고령화도 심각한 수준이어서 2015년 50세 이상이 58.8%에 달했다. 2007년의 29.6%와 비교하면 배나 높아졌다.
어선의 노후화로 조업 안전성에도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건조한 지 21년이 넘은 노후 어선이 88.2%에 이른다.
이는 저임금과 맞물려 선원들의 이직률이 늘어나고 재승선을 기피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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