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아빠 "백신 의무접종, 희소병 딸 생명과 직결" 눈물의 편지
백신 의무화 정부 조치에 반기 든 주지사에 "불복 말라" 서한 보내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 정부가 최근 법제화한 영유아 백신 의무접종 조치에 일부 주가 불복할 뜻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희소 면역질환을 앓는 딸을 둔 한 아빠가 이 조치에 저항하는 북부 베네토 주의 주지사에게 절절한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되고 있다.
28일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베네토 주 파도바에 거주하는 남성 니콜라 포마로(52)는 정부의 백신 의무화 조치의 위헌 여부를 헌법 재판소에 묻겠다고 밝힌 루카 자이아 베네토 주지사에게 최근 편지를 발송했다.
파도바의 한 회사에서 엔지니어 겸 연구원으로 일하는 그는 다섯 살 난 자신의 딸이 2년 전 백혈병으로 쓰러진 뒤 미국에서 골수 이식 수술과 고통스러운 화학요법 치료를 거쳤고, 3개월 동안 무균실에서 사투를 벌였으며 수차례 감염병으로 생사를 넘나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편지에서 "친애하는 자이아 지사님, 이 편지는 주 정부 결정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녀에게 예방 접종을 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면역 체계가 약한 다른 아이들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어린 딸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의 예방접종 여부에 달려 있다"며 자이아 지사에게 현재 고려하고 있는 헌법재판소 제소를 단념할 것을 호소했다.
북부동맹 소속 자이아 지사는 취학 전 영유아에게 홍역, 뇌수막염, 소아마비 등 12가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정부 조치는 "과도하게 강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헌법 소원을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백신 효용성에 의구심을 갖지는 않지만, 정부 방침은 시민의 자유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포마로는 편지에서 "파도바의 암병동에서는 매년 수십 명의 아이들이 (딸과)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앓는 병은 다양하지만 면역 결핍이라는 한 가지는 공통적"이라며 "질병과 이에 따른 치료 때문에 이 아이들은 면역 체계가 약해져 백신 접종을 할 수가 없고, 결과적으로 백신 접종률이 떨어지면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 유행을 막기 위해서는 각국의 백신 접종률이 95% 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으나 이탈리아의 예방접종률은 2013년 88%, 2014년 86%, 2015년 85.3% 등으로 계속 떨어지며 권고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들어 홍역과 뇌수막염 등 전염병 발병 건수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자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0∼6세 영유아에 대해 12가지 전염병에 대한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법령을 승인했다.
포마로는 "질병만큼 공평한 것은 없다. 질병은 사회적 지위, 은행 계좌, 정치나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으로 찾아올 수 있다"며 "내 딸을 비롯해 끔찍한 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매일 치료하는 의사들과 한번 상담해보고, 그들에게 백신 의무화가 필요한지 한번 물어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상당수 부모가 백신의 안전성을 우려하며 자녀 예방 접종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 동안 예방접종률이 급락하는 것과 관련, 이탈리아 정부는 제1야당 오성운동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며 논쟁이 일기도 했다.
베페 그릴로 대표를 비롯한 오성운동 일부 인사는 백신 접종이 자폐증, 백혈병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며 백신 접종 반대 운동을 벌여온 것으로 지목됐으나, 그릴로 대표는 오성운동이 백신 반대 운동을 벌여왔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