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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기우제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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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기우제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전국 명산과 사찰 등지에서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가 최근에 잇따라 열렸다.

과학기술과 관개시설 발달로 사라진 줄 알았던 기우제가 다시 등장한 것은 농촌 가뭄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농업용수를 확보하려고 지자체까지 나서서 관정 개발, 간이 양수장 설치, 저수지 물 채우기 등 총력전을 펴고 있으나 해갈에는 역부족이다.

인공강우까지 성공한 인간이지만 변화무쌍한 자연현상에는 여전히 미약한 존재여서 하늘의 힘이라도 빌려보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지자체 단체장 등이 주관하는 기우제는 바짝 마른 들녘에서 타들어 가는 농작물을 지켜보는 농민의 아픔을 위로하는 의미도 있다.

비를 염원하는 의식은 지역과 민족을 막론하고 농경사회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이뤄졌다.






동물을 제물로 바치고 기도하거나 산에 장작을 쌓아 연기를 피우는 방식이 흔했다. 물을 관장한다는 용을 괴롭히는 주술도 있었다.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기우 의식을 여성이 주관한다. 비를 내리는 하늘(남성)을 움직이는 것은 땅(여성)이라는 우주관이 여기에 깔렸다.

동유럽에서는 꽃으로 알몸을 장식한 소녀들이 춤을 추며 가가호호 방문할 때 마을 여인들이 이들에게 물을 뿌리며 강우를 빌었다.

인도 여성들은 사람 모양의 작은 진흙 상을 만들어 수레에 싣고 집집이 돌아다니다가 마른 땅에 내려놓는 풍습이 있다.

비를 부르고 땅을 기름지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믿음에서다.






우리나라 전통 기우 행사에서도 여성 역할이 컸다.

경주에서는 푸른 버들가지 고깔을 쓴 무당 수십 명이 젖가슴과 하체가 드러날 정도로 저고리 깃과 치맛자락을 들락날락하는 음란 춤을 췄다.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으면 동네 여인들이 춤추는 무당에게 물을 끼얹으며 비를 염원한다.

삼남지방(충청·전라·경상도)에서는 여인들이 산 정상에 올라 일제히 방뇨하면서 강우를 빌기도 했다.

음양 사상에서 양이 과도할 때 가뭄이 생기므로 음인 여자가 집단으로 춤을 추거나 오줌을 누면 음양 기운이 조화를 이뤄 비가 내린다는 믿음에서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기우 의례도 많았다.

유럽에서는 긴 가뭄 때 돌에 물을 적시거나 물속에 돌을 담가둔다. 돌을 비의 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나무에 올라가 망치로 빈 솥을 쳐 요란한 소리를 내면 밑에서 불꽃을 만든다. 소음과 불꽃은 소나기를 예고하는 천둥과 벼락을 상징한다.






미국 중부 인디언들은 가물 때 개구리를 단지에 넣고서 물가 나뭇가지로 단지를 치며 비를 노래했다.

물이 가득 찬 단지에 도롱뇽을 담아두고 버들가지로 두드리며 남자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게 한 우리나라 궁중 기우제와 흡사하다.

개구리와 도롱뇽, 버들가지 등은 모두 물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동양에서는 물을 지배한다는 용과 관련한 의식이 많다.

용이 사는 웅덩이를 뜻하는 용소가 기우제 장소로 인기를 끈 이유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서는 백두대간에 속하는 대야산 아래 용소에서 기우제를 지내는데 그 방식이 매우 특이하다.

용소에 흘러드는 물을 막아 바닥이 드러나면, 땔감 나무를 잔뜩 채워놓고 불을 질러서 연기가 치솟을 때 용 꼬리 탄다고 외친다.

그런 다음 멧돼지 멱을 따서 나오는 피를 받아 사방에 뿌리고 제사를 지낸다.

안동시 임동면에서는 영검산에 불을 피우고 인근 도연폭포에서 개를 잡아 피를 용소 주변에 뿌렸다.

문경과 진행 방식이 다소 달랐으나 동물 혈액으로 용을 자극해서 비를 내리게 한다는 취지는 같았다.

농경 국가에서 물은 백성의 생존과 국가 존폐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치수는 왕이 가장 관심을 두고 관리한 분야였다.

천재지변은 단순한 자연현상이지만 통치자가 무능하거나 덕이 없을 때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흉년으로 백성의 생계가 막막해지면 왕권은 흔들린다.

고대 부족국가인 부여에서는 가뭄이나 장마로 오곡이 영글지 않자 왕을 바꾸거나 처형했다고 한다.

부여 전통은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 영향을 미쳐 가뭄 때 왕은 다양한 방식으로 속죄하거나 선정을 베풀었다.

실의에 잠긴 민심을 수습하고 분노한 하늘을 달래기 위해서다.

삼국시대 선정은 백성 동원한 토목 공사 중지, 죄수 사면, 빈민 구제, 세금 감면, 인재 발굴 등이다.

용 그림을 그려놓고 강우를 빌거나 시장을 이전하는 이색 전통도 있었다.






극심한 가뭄을 백성의 소통 실패 탓으로 간주하고서 시장을 강변이나 골목으로 옮겨 물품을 거래하도록 했다.

고려 시대 기우제는 대부분 무당이 주관했고, 왕은 신하들과 함께 남교(동묘 북쪽 다리)로 나가 비를 기원했다.

왕은 물론, 백성도 근신에 들어가 음주와 가무를 삼가고 부채, 양산, 삿갓, 모자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가축 살상을 피했다.

고려 국교가 불교였는데도 가뭄 때는 밀교 성격이 짙은 '취무도우' 행사를 허용했다.

전국에서 신통력이 높기로 유명한 무당들이 수도 개성에 모여 무속의 힘으로 강우를 기원하는 행사로 많을 때는 300명 이상 참석했다고 한다.

조선도 유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나 신앙을 탄압했으나 도교·불교·무속 신앙이 뒤섞인 기우제는 예외였다.

조선 기우제는 폭로의례, 기우제용, 기고 의례 등 3가지로 나뉜다.

왕이나 무당이 기상이변을 불러왔다고 보고 이들을 뜨거운 햇볕에 장기간 드러내 고통을 줌으로써 강우를 비는 것이 폭로의례다.

기우제룡은 용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강우를 기도하거나 아이가 땡볕 아래서 도마뱀을 작대기로 괴롭히며 놀게 하는 의식이다.

용을 대신해서 도마뱀을 못살게 굴면 비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주술이 이 의식에 담겼다.

조선 시대 대표 기우제인 기고 의례는 왕이 제사를 주관하는 친제와 정3품 이상 관료가 제관이 되는 섭제로 나뉜다.

조선 후기 국가 주도 기우제는 이전과 달리 불교 승려나 무당, 시각장애인이 배제되고 유교 방식으로 일원화한 것이 특징이다.

민간에서는 기우 의례가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웠다.

경남 합천 디딜방아뱅이, 경상도 꽝철이 쫓기, 충남 금산 농바우끄시기, 경북 고령 미숭산 천제 등이 대표 사례다.

디딜방아뱅이는 이웃 마을에서 훔쳐 온 디딜방아를 거꾸로 세운 다음 여성 생리혈이 묻은 속곳을 걸어놓고 여인들이 팥죽을 뿌리고 농악을 울리면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다.

농바우끄시기는 금산 시루봉 중턱 농바위를 부녀자들이 끄는 시늉을 하다가 인근 계곡 물에 옷을 벗고 떼 지어 들어가 키로 물을 퍼붓는 의식이다.

고령군 미숭산 천제당 제사에는 남성만 참가한다. 여성들은 강물을 막은 보에서 기도하다가 천제당 농악 소리가 들리면 바가지로 물을 뿌리면서 '비가 온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꽝철이 쫓기는 매우 흥미롭다.

꽝철이는 용이 못돼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상상 동물로 비를 몹시 싫어한 탓에 머무르는 곳마다 심한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산 능선 등을 찾아다니며 꽹과리나 징을 쳐서 꽝철이를 내쫓는다.

기우 의례는 수천 년의 명맥을 이어가 인공위성으로 우주를 탐사하는 현대에도 생명을 유지한다.

인간이 천재지변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한 초월적 존재나 주술에 기대는 전통 의례는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 구성원이 자연에 순응하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함으로써 동질성을 확인하고 연대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는 기도 대상을 농촌으로 국한하지 말고 도시로 넓혀 성공과 행복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 가뭄까지 씻어주는 현대판 기우제가 필요하다.

소득 양극화와 청년 실업, 가계 부채, 노인 빈곤 등으로 가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서민들은 폭우 성 빗줄기를 갈망한다.

had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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