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기자가 직접 들어가 본 세월호
1천162일 만에 객실·화물칸 내부 실물 언론에 최초 공개
(목포=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지금은 바닥이 된 세월호 좌현 벽체를 딛고 3층 중앙 로비에 들어서자 머리 위 22m 높이에 있는 우현 창문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지금은 작업자 통로가 널찍하게 뚫려있지만, 배가 기울면서 내부 구조물이 쏟아지고 바닷물이 들이찼을 참사 상황을 떠올리니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맹골수도 아래로 침몰했던 세월호 내부 실물이 21일 언론에 최초로 공개됐다. 참사 1천162일 만이다.
기자들은 4층 선미부 객실을 거쳐 3층 로비 내부로 들어갔다.
옆으로 드러누운 세월호는 수색로 확보를 위해 선미부 5층 천장과 바닥이 절단돼 3층 천장이자 4층 바닥까지 밖으로 드러났다.
선미 외부 거푸집에서 수색로를 따라 불과 10여m를 나아가자 3∼5층 객실부 한복판인 3층 중앙 로비에 다달았다.
짧은 거리를 움직였지만, 침몰 전에는 천장이었던 벽면에서 튀어나온 각종 설비와 발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좌현부 벽체 철판 접합부위 틈은 이동 속도를 늦추는 여러 걸림돌이 됐을 것이다.
내부를 안내한 장민호 코리아쌀배지 수습총괄팀장은 진흙과 지장물 틈에 숨겨져 있었던 이러한 장애물 탓에 여러 작업자가 상처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이 발 디딘 좌현부 쪽 창문은 침몰 당시 충격에 찌그러진 복도 벽체와 맞붙어 구멍이 메워져 있었다.
장 팀장은 벽면을 따라 4m 높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선을 비추며 객실 내부에 쌓였던 진흙이 만들어낸 경계선이라고 부연했다.
수색은 이 진흙을 손으로 걷어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3층 중앙부 객실에서 왔던 길을 되짚어가자 지난 9일 사람 어깨뼈로 추정되는 유골 한 점이 발견됐던 주방으로 이어졌다.
수색로 확보를 위한 절단 작업이 끝난 이곳에는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3층 로비 수색로를 빠져나와 바로 옆 선미 구역 수색 거푸집을 오르자 단원고 조은화양 유골이 발견됐던 4층 객실이 나왔다.
5층 바닥까지 뜯겨 나가면서 선체 외부로 드러난 4층 객실에는 참사 당시 충격에 찌그러진 철판 틈에 목재 마감재가 끼어 있었다.
다시 두께 6㎜ 철판을 사이에 둔 3층 객실로 들어가자 장 팀장은 이곳이 일반인 미수습자 이영숙씨 유골이 나왔던 장소라고 말했다.
해당 공간은 화물칸 수색로 확보를 위한 추가 절단 준비 작업으로 내부가 모두 치워진 상태였다.
선미부 객실에서 나와 1.5m 높이 리프팅빔이 받치고 있는 좌현부 아래로 들어갔다.
화물과 진흙, 지장물 무게를 버티지 못하게 찢어진 하부 철판의 모습이 드러났다.
찢긴 철판 틈 사이로 차창이 깨진 승용차가 운전석 내부를 훤히 드러냈다.
승용차 창문 옆에는 세월호 화물칸의 모습을 담던 CCTV 카메라가 고정돼 있었다.
좌현 하부 바닥은 화물칸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곳곳에 얼룩 때가 묻었다.
기자들은 마지막으로 워킹타워를 타고 22m 위 세월호 우현부로 올라갔다.
목포신항 전경이 한눈에 펼쳐질 정도로 높이가 아찔했다.
우현부에는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스태빌라이저가 솟아 있었다. 인양 당시 수면 밖으로 가장 먼저 나왔던 날개 모양 구조물이다.
화물칸 수색을 위한 가로·세로 2m 크기 구멍 아래에서 악취가 솟아 올라왔다.
장 팀장은 진흙과 지장물을 모두 빼내기 전 객실에서도 비슷한 악취가 진동했다고 설명했다.
차량과 화물이 진흙과 뒤엉킨 화물칸 수색은 다음 달부터 2달가량 이어질 전망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남은 미수습자 5명의 흔적이 화물칸 어딘가에 남아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화물칸 수색까지 끝나면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일반승객 104명 등 모두 476명을 태우고 침몰한 세월호 내부 수색이 모두 끝이난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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