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절벽을 딛고 서는 클라이밍의 즐거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인공암벽을 오르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고도의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멘탈(Mental) 스포츠'다.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암벽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의 짜릿함과 성취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스포츠 클라이밍 기초 동작은 쉬워 보인다. 실내 인공암벽에 빼곡하게 달린 홀더(holder)를 두 발로 딛고, 두 손으로 붙들면서 옆으로 이동하면 되는 간단한 동작이다. 다른 초보자들의 움직임도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클라이밍 초보가 가장 처음 배우는 이 동작의 핵심 포인트는 중심 잡기. 손과 발로 삼각형을 만들며 옆으로 이동하는 연습이다.
체험에 나선 기자는 조교가 쏘는 레이저포인터의 빨간 불빛을 따라 홀더에 한 발씩 올라선 후 두 손으로 정수리 위에 있는 홀더를 붙잡았다. 다시 포인터 불빛을 따라 한 손을 뻗어 다른 홀더를 붙잡고 대각선에 있는 발을 옮겨 두 팔의 중간쯤으로 옮겼다. 벽면을 이동하며 삼각형과 역삼각형을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동작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팔이 저리고 균형이 무너졌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팔에 잔뜩 힘이 들어간 탓이다.
이재용(46)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 감독(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감독)은 "팔심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몸의 중심을 최대한 낮춰 다리를 먼저 옮기고 손이 따라가야 한다. 팔은 붙들기만 하고 다리 힘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개구리가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을 유지한 채 벽에 매달리거나 발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 살 떨리는 클라이밍 체험
좌우로 이동하는 동작을 연습한 후에는 상하로 이동하는 방법을 배운다. 상하 이동도 삼각형과 역삼각형을 만들면서 진행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벽의 높이는 5m에 불과하지만 갈수록 지면이 멀어지기 때문인지 팔과 다리에는 더한 힘이 가해진다. 또 가장 적당한 위치·모양·크기의 홀더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도 안게 된다. 하지만 고민이 길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만큼 힘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스포츠 클라이밍을 '멘탈 스포츠'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벽에 매달려 다음에 이동할 홀더에 집중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 감독은 "힘은 빠져도 정신줄은 놓으면 안 되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높이 5m 벽에서 상하좌우 이동법을 연습한 후 11m 벽에 도전했다. 물론 허리에 찬 안전벨트에 로프를 걸고 손에는 초크 가루를 발랐다. 벽 앞에 서자 끝자락이 까마득해 보인다. 포인터 불빛을 쫓아 손과 발을 움직이며 오른다. 배운 대로 중심을 잔뜩 낮췄다가 발로 홀더를 딛고 손으로 붙드는 동작을 반복했다.
벽의 절반쯤에 이르자 포인터 불빛 없이 혼자서 오르라고 한다. 팔과 다리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고 어느 홀더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온몸의 신경과 정신은 두 손과 두 발에만 집중됐다. 어느덧 높이가 까마득해졌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종아리 근육이 후들거리고 어느덧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절벽의 끝자락에 매달린 마지막 홀더를 붙잡았다. 그 순간 방망이질 치던 가슴이 부풀어 터질 듯했다. 절벽과 나 사이에는 밧줄 하나만 팽팽하게 걸려 있었다.
◇ 누구나 즐기기에 좋은 운동
스포츠 클라이밍은 인공 벽면에 홀더를 붙여 등반을 즐기는 레저 스포츠다.
프랑스의 산악가이드인 가스통 레뷰파가 1940년 교육 훈련용으로 각목과 널빤지를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1968년 영국 리즈대학에서 최초의 인공암벽이 설치되면서 전 세계로 퍼졌고, 우리나라에는 1988년 도입됐다.
최근 스포츠 클라이밍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국에 있는 약 600개 인공암장에서 스포츠 클라이밍을 즐기는 인구는 약 12만 명으로 추산된다. '암벽여제' 김자인 선수가 지난 5월 높이 555m의 롯데월드 타워를 맨손으로 오르면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지난 6월 초순 찾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 노스페이스 아웃도어문화센터에는 평일 저녁 시간을 이용해 스포츠 클라이밍을 배우려는 20~40대 남녀 10여 명이 강사의 설명에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곧잘 따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내려서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첫 강습에 참석한 회사원 안성열(28) 씨는 "TV에서 스포츠 클라이밍을 하는 것을 봤는데 호기심이 생겨 시작하게 됐다"며 "암벽에 붙어 이동하기가 쉽지 않지만 할수록 흥미롭고 운동이 되는 것 같아 앞으로 계속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청소년과 어린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스포츠 클라이밍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레포츠라는 방증이다. 사계절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운동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70㎏ 성인 기준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은 588㎉로 테니스(493㎉), 에어로빅(457㎉), 볼링(211㎉)보다 앞선다. 다이어트 효과는 물론 균형 잡힌 체형을 만들 수 있고, 홀드의 위치를 익히는 과정에서 공간지각능력도 발달한다.
이 감독은 "신체 특성과 체력에 맞춰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류머티즘이 있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 초급반, 주 2회 두 달 과정
인공암벽은 로프로 등반하는 높은 벽과 로프 없이 오르는 낮은 벽으로 나뉜다. 낮은 벽은 초보자가 근력을 기르고 기술을 연습할 때 사용하거나 등반 전후 몸을 풀 때 이용한다. 높은 벽에서는 지구력을 강화하고 카라비너 걸기 등 각종 기술을 연마할 수 있다.
스포츠 클라이밍에는 기본적으로 암벽화, 안전벨트, 초크 백 등의 장비가 필요하다. 복장은 신축성 있는 편안한 옷이면 된다.
암벽화는 조임 끈이 있는 레이스업(Lace-up)이나 벨크로(Velcro) 타입 등이 있는데 초보자는 벗고 신기 편한 벨크로 타입이 좋다. 신발 크기는 발가락이 굽어질 정도로 꼭 끼는 것을 사용하는데, 발가락이 바닥 쪽으로 굽어질수록 힘을 많이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벨트는 일반적으로 다리 벨트와 허리벨트로 구성되는데 착용했을 때 허리벨트는 단단히 조이고 다리 벨트 부분은 손바닥이 들어갈 정도로 조정하면 된다. 초크 백은 손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초크를 담는 주머니로 주먹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정도의 크기가 적당하다.
초급반은 주 2회 두 달 과정으로 운영되며, 이후 심화 교육을 받거나 자유운동을 할 수 있다. 적성이나 체력을 확인하려면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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