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웜비어 사건, 정상회담 악재 되지 않도록 해야
(서울=연합뉴스)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풀려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19일(현지시간) 석방 엿새 만에 끝내 사망했다. 미국 의료진은 그가 광범위한 뇌 조직 손상으로 혼수상태(코마)에 빠진 것으로 진단했지만 아직 직접적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 북한 측은 웜비어가 지난해 3월 법정에서 교화형을 선고받은 직후 식중독 증세인 '보툴리누스 중독증'을 보이다가 수면제를 복용하고 코마에 빠졌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곧이듣는 이는 많지 않다. 그의 신체에서 식중독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데다 웜비어와 같은 임상례가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웜비어의 몸에서 가혹 행위를 입증할만한 외상이나 골절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유력지들은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구타 의혹을 제기했다. 웜비어의 부모는 성명을 통해 "북한의 손아귀에서 받은 끔찍한 고문과 같은 학대"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미국 조야는 웜비어 사망으로 격앙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웜비어의 사망 소식을 보고받고 "북한 정권의 잔혹성을 규탄한다"는 공식 성명을 내놓았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반드시 북한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고,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웜비어는 김정은 정권에 살해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잇따른 핵ㆍ미사일 도발에 따른 제재와 압박으로 가뜩이나 냉각된 북미 관계가 이 사건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웜비어 석방을 위해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하면서 북미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는 듯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웜비어의 죽음으로 미국 내 반북 정서가 들끓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기류가 일주일여 후면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북미 관계가 악화하면 새 정부의 대북정책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대화·협력을 모색하며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잡아보려는 새 정부로서는 안타까운 상황 전개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주미대사관을 통해 웜비어 유족에게 조전을 보냈다. 문 대통령은 또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이 웜비어의 상태가 나빠진 즉시 가족에게 알리고 최선의 치료를 받게 했어야 할 인도적 의무를 이행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인류 보편적 규범과 가치인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대단히 개탄했다"고 전했다. 평소 인권을 강조해 온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따른 입장 표명일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의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웜비어 사건은 20대 청년의 비극적 죽음을 넘어 한반도 안보 상황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건이 됐다. 북한이 결정적 반증을 내놓지 않는 한 김정은 정권의 인권 유린과 잔혹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대로 흘러가면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은 한층 더 강화되고 북미 관계도 나빠질 것이 뻔하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폭도 좁혀질 공산이 크다. 웜비어 사건으로 미국 내 반북 정서가 악화하자 정상회담에 미칠 여파를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 사건의 파문을 주시하면서 악재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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