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성배' 슈틸리케 경질로 본 축구대표팀 감독 잔혹사
히딩크 감독 이후 9명 가운데 6명이 중도 하차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요하네스 본프레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005년 1년여 만에 사실상 경질됐을 때 독일월드컵 공식 홈페이지는 이 소식을 전하며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했다.
영광스러운 자리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책임과 무서운 대가가 따르는 자리라는 것이다.
15일 불명예 퇴진한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은 물론 지난 10여 년간 한국 대표팀을 이끈 감독들의 참혹한 역사를 보면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팀에 월드컵 4강 신화를 안겨준 거스 히딩크 이후 슈틸리케까지 대표팀을 이끌었던 9명의 지도자 가운데 임기를 다 채운 감독은 딕 아드보카트, 허정무, 최강희 감독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감독들은 경기력 부진 등을 이유로 경질되거나 자진사퇴 형식을 빌어 물러났다.
히딩크 감독이 박수를 받으며 물러난 이후 2003년 후임 사령탑으로 선임된 이는 포르투갈 출신의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었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가 식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팀을 물려받은 코엘류는 스리백(3-back)에 익숙한 한국축구를 유럽형 포백으로 바꾸는 등의 대대적 수술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성과는 좋지 못했고, 2003년 10월 약체 오만과의 원정에서 패하는 '오만 쇼크'와 월드컵 예선 몰디브전서 졸전 끝에 비긴 '몰디브 망신'으로 퇴진 압력이 거세지자 결국 1년2개월 만에 물러나야 했다.
이어 등장한 이가 히딩크와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본프레러 감독.
그는 독일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획득하며 6년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으나 내용면에서는 졸전을 면치 못했다는 비난이 이어지자 월드컵 개막을 10개월 앞두고 자진 사임 형식으로 경질됐다.
이후 짧은 임기를 채운 아드보카트 감독 아래에서 수석코치를 하다 2006년 사령탑에 오른 핌 베어벡 감독은 2007년 인도네시아 아시안컵에서 저조한 득점력을 비판받자 자진 사퇴했다.
역시 네덜란드 출신으로, 히딩크 감독의 수제자로도 불린 베어벡 감독은 당시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 프리미어리거 3인방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경기를 치러야 했던 '불운'의 감독으로도 기억된다.
히딩크 이후 4명의 해외파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겼던 축구협회는 연이은 사령탑의 실패 속에 국내로 눈을 돌렸다.
2008년 취임한 허정무 감독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신화를 쓰고 물러난 이후 대표팀을 이어받은 이는 조광래 감독.
조광래 감독은 A매치 12승 6무 3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으나 브라질월드컵 지역예선 레바논전 패배를 빌미로 1년 4개월 만에 경질됐다.
그러나 사실상의 경질 이유는 선수 선발 과정에서 축구협회 수뇌부와의 갈등, 스폰서의 외압 등이라는 것이 당시 축구계 안팎의 관측이었다.
이후 최강희 감독이 '시한부 감독'을 자처해 브라질월드컵 본선행을 이뤘고, 대표팀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홍명보 감독에게 물려줬다.
대한민국 축구 영광의 시절을 재연하고 싶은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취임한 홍명보 감독 역시 성배 안에 든 독을 피해가지 못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의 참패 이후 거센 경질 여론에 시달렸던 홍 감독은 일단 축구협회의 재신임을 받았으나 쏟아지는 비난 속에 곧 자진 사퇴하게 됐다.
이후 선임돼 2년 9개월이라는 최장 기간 대표팀을 이끈 슈틸리케 감독이 '도하 참사'의 후폭풍을 피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면서 '한국 대표팀 감독 = 독이 든 성배'라는 공식은 당분간 이어지게 됐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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