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녹색 물감 풀어놓았나"…녹조에 신음하는 낙동강
강정고령보·달성보 수질 갈수록 악화…조류경보 격상
(대구=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다리 위로 지나가다가 보니까 억수로 진하게 보이던데요. 말 그대로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더라고요."
15일 오후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낙동강 강정고령보 좌안(동쪽)에 있는 쉼터에서 만난 한무리 나들이객에게 낙동강 물 색깔을 봤느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다.
강정고령보 일대 낙동강은 최근 들어 녹조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대구지방환경청이 이곳에서 물을 떠 분석한 결과 남조류 세포 수는 5일 1만1천844cells/mL에서 12일 5만1천555cells/mL로 급증했다.
지난달 22일 215cells/mL, 29일에는 3천813cells/mL이었다.
이에 대구환경청은 지난 7일 조류경보 '관심' 단계를 발령한 데 이어 14일 조류경보 '경계' 단계로 격상해 발령했다.
강정고령보를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이날 오후 사무실 인근 게시판에 조류경보 관심 단계를 알리는 현수막을 떼어내고 경계 단계를 발령한 사실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수영이나 물놀이를 자제하고 어패류를 잡아먹지 않도록 해야 하며 물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런 수치나 발표가 아니더라도 물이 탁해진 사실은 눈으로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강정고령보 수문 위로 흐르는 물은 짙은 녹색으로 녹조가 심각해 보였다.
하얀 거품이 녹색 물과 대조를 이뤘다.
수문 상류엔 녹조 띠가 보였고, 수문 아래에 있는 낙락섬 옆에도 녹조가 길게 띠를 형성하고 있다.
보 하류 쪽 바닥 돌에는 지저분한 이끼 등이 더덕더덕 붙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물이 더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자전거를 타고 강정고령보에 자주 온다는 대구시민 김신영(32)씨는 "녹조 줄이겠다고 물을 흘려보냈는데도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곳에서 낙동강 하류로 물길 따라 30㎞ 떨어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 앞 낙동강 가장자리에도 선명한 녹조 띠를 확인할 수 있다. 녹조 알갱이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은 낙동강을 관찰하던 중 지난 5일 이곳에서 녹조 띠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수자원공사가 녹조 확산을 막기 위해 수차를 설치해 돌리고 있으나 역부족으로 보였다.
도동서원 앞에서 만난 한 60대 주민은 "해마다 녹조가 반복해서 발생해 물이 썩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70대 할아버지는 "어릴 때는 물을 먹기도 하고 빨래할 때도 썼는데 요즘에는 그럴 수가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도동서원에서 10㎞ 상류에 있는 낙동강 달성보 수질도 악화한 상태다.
국립환경과학원 낙동강물환경연구소가 달성보 일대에서 측정한 남조류 개체 수는 지난달 38cells/mL에서 이달 5일 13만1천963cells/mL로 급증했다.
8일 7만4천725cells/mL로 잠시 주춤하는가 하더니 12일 26만3천805cells/mL로 급격하게 늘었다.
이렇게 최근 들어 낙동강에서 수질이 악화한 이유는 높은 기온이 이어졌고 비가 적게 와 남조류가 증식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지난 13일까지 누적 강수량은 상주 169.8㎜, 구미 141.7㎜, 대구 156.3㎜로 예년의 50∼60%에 그친다.
지난해 같은 기간 누적 강수량은 상주 328.5㎜, 구미 320.8㎜, 대구 335.8㎜였다.
15일도 대구는 맑은 가운데 낮 기온이 33도에 이르러 무더운 날씨를 보였다.
정부는 녹조를 완화하겠다며 지난 1일 전국 4대강 보 가운데 강정고령보와 달성보 등 6곳 수문을 개방했다.
그러나 수문 개방 이후에도 녹조가 번져 그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상황을 놓고 환경단체는 녹조 완화를 위해 수문을 더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농민단체는 아까운 물만 내려보냈다며 반발한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수문을 다시 닫는 바람에 유속이 느려져 녹조가 생긴 만큼 더 적극 열어야 한다"며 "제일 하한 수위까지 낮추더라도 일부 양수장 취수구만 조금 내리면 농사를 짓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구 달성군 다사읍 농촌지도자회, 다사읍이장협의회 등 농민단체는 다사읍 곳곳에 '극심한 가뭄에 물 없으면 모내기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란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내걸고 수문 개방에 반대한다.
다사읍 주민 여문학(72)씨는 "물을 저런 식으로 빼서는 녹조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며 "강정고령보 주변 농민은 지하수로 밭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은데 수위가 내려가면 지하수가 나오지 않아 농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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