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기저귀 7천500장 갈고 부처님 만났죠"
현응 스님 저서 '깨달음과 역사' 영문번역한 홍창성 교수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쌍둥이 딸들의 기저귀를 7천500장쯤 갈았을 때,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부처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느낌이 들었죠."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불광출판사)'를 영어로 번역한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 철학과 홍창성(53) 교수는 "불교와 만나게 된 건 일상 속의 뜻밖의 계기 덕분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깨달음과 역사'는 1990년 현응 스님이 세수 35세 때 출간한 책이다. 2년 전 증보개정판이 나오면서 불교계에서는 깨달음이 학습해서 이해하는 것인지, 수행해서 깨치는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불붙었다.
이 '문제작'을 최초로 외국에 소개하는 홍 교수를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사찰음식점에서 만났다.
서울 마포고, 서울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그는 서양철학 전공자다. 불교계의 '뜨거운 감자'를 어쩌다 서양철학자가 맡게 된 걸까.
홍 교수는 "현응 스님은 깨달음이 이해의 영역이기 때문에 설법, 토론, 대화를 통해 얻는 것이지, 참선이나 선정(禪定) 수행을 통해 단박에 이르는 신비로운 경지가 아니라고 설명한다"며 "이런 접근법은 서양철학에서 오히려 익숙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영어권에서는 동아시아 불교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 불성(佛性)·여래장(如來藏) 사상 등은 논증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스님의 책에는 유럽인들의 회의적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논증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그는 "스님은 10대에 출가해 근대교육 없이 산중에서 종아리 맞아가며 한문 공부를 한 분인데, 어떻게 30대에 서양철학 최신이론까지 녹여냈는지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저자인 현응 스님과 번역자인 홍 교수의 인연이 깊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2010년 '불교평론'에 현응 스님이 기고한 글을 보고 홍 교수가 이메일을 보내 연락을 텄고, 실제 얼굴을 마주한 건 세 번이 전부였다고 한다.
홍 교수는 박사과정 시절 숭산(崇山·1927-2004)스님이 미국에 세운 선원을 드나들며 불교에 눈을 떴다.
2005년부터 3년간 미국철학회 아시아분과회장을 맡은 뒤로는 서구 학계에 불교 철학을 소개해왔다.
홍 교수와 공동번역자인 부인 유선경 미네소타주립대 철학과 교수는 이번 번역본 출판을 기념해 강연회를 연다. 오는 21·22·28·29일 4회에 걸쳐 서울 종로구 사찰음식전문점 '마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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