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가대표선수촌 한국어 열풍…"찜통훈련에도 수업 꼬박"
사격·유도 등 선수 30여명 '열공'…"한국어 배우면 훈련·취업에 도움"
베트남 첫 올림픽 금 조련 박충건 사격팀 감독·하노이 한인회 지원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12일 밤 베트남 수도 하노이 외곽에 있는 국가체육훈련원의 건물 한 쪽에 선수들이 한글 교재를 손에 들고 하나씩 모여들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는 한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국가체육훈련원은 한국으로 치면 '국가대표의 요람'으로 불리는 태릉선수촌인 셈이다.
오는 8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 게임을 앞두고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 훈련으로 지칠 만도 하지만 평소와 비슷한 30여 명의 선수가 자리에 앉아 어눌하지만 큰 목소리로 한국어를 배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베트남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강좌는 지난 3월 개설됐다. 박충건(51) 베트남 사격대표팀 감독의 제안과 하노이 한인회의 지원 덕분이었다.
박 감독은 작년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베트남 역사상 첫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당시 호앙 쑤언 빈(43) 선수가 1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일약 국가 영웅이 됐다.
사격뿐만 아니라 유도와 양국, 태권도 국가대표팀도 한국인이 지도하고 한국 전지훈련이 1년에 1∼3차례 이뤄지자 선수들 사이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사격 선수인 응우옌 번 꾸언(28)은 "한국에서 훈련을 받을 때 한국어로 소통하면 좋을 것 같아 배우고 있다"며 "열심히 하고 있지만, 발음이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쩐 티 투 호아이(24) 세팍타크로 선수는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며 "한국어로 일상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소개했다.
한국어 수업은 하노이 한인회 문화센터에서 한·베트남 가정 어린이의 한글 교육을 맡은 조정순(58), 이미경(58) 씨 등 자원봉사자 4명이 번갈아 하고 있다.
이들은 "선수들이 고된 훈련으로 피곤할 텐데도 원정 훈련이나 경기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꼬박꼬박 수업에 참석해 조는 사람 없이 열정적으로 한국어를 배운다"고 입을 모았다.
선수촌에서는 300여 명의 선수들이 1년에 300일가량 합숙훈련을 한다. 가정이 있는 선수들은 출퇴근도 한다.
훈련이 끝난 뒤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매점밖에 없는 선수촌에서 한국어 교실이 선수들에게 자기 계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한국어를 배워두면 은퇴 이후에 한국 기업이나 관련 업체에서 일자리를 찾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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