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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클론 "나이 쉰에 신나는 EDM…'살아있구나' 느꼈죠"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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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클론 "나이 쉰에 신나는 EDM…'살아있구나' 느꼈죠"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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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클론 "나이 쉰에 신나는 EDM…'살아있구나' 느꼈죠"①

12년 만에 20주년 기념 앨범 '위 아' 발표…DJ 활동한 구준엽이 음악 작업

90년대 대만서 돌풍…"쿨롱 인기, 아무도 안 믿었죠"

강원래 "빠른 포기가 새로운 꿈 줘…뮤지컬 제작하고 딸도 얻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들뜬다기보다, 그냥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지난 2005년 클론(강원래·구준엽, 이상 48)이 5집으로 컴백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까칠해 보였던 강원래는 아들 '선'이처럼 바가지 머리로 잘랐다며 눈꼬리가 처질 정도로 밝았고, 평소 차분한 구준엽도 손수 만든 EDM(일렉트로닉댄스뮤직) 장르로 새 앨범을 채웠다며 뿌듯함을 숨기지 않았다.

클론이 5집 이후 12년 만에 데뷔 20주년을 기념한 앨범 '위 아'(We Are)를 29일 발표한다.

에일리가 피처링한 선공개곡 '밤디라리라'와 타이틀곡 '에브리바디'(EVERYBODY) 등 신곡 3곡과 히트곡 '초련'과 '난'의 리믹스 버전이 새로운 제목으로 실렸다. '빵빵한' 전자 사운드가 강하게 귀를 때리며 기분을 '업' 시키는 통일성이 뚜렷하다.

1996년 1집 '아 유 레디?'(Are You Ready?)로 데뷔한 이들은 '꿍따리 샤바라', '난', '도시 탈출', '돌아와', '초련'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내고 대만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한류 스타로 떠올랐지만 비운의 팀으로 사라질 뻔했다.

2000년 강원래가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며 활동이 중단된 것. '춤꾼'들이 뭉쳐 댄스음악을 무기로 성공한 팀이었기에 절망은 더욱 컸다.

그러나 두 사람은 팀을 해체하지 않았다. 그리고서 강원래는 장애인 인권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구준엽은 'DJ쿠'란 예명으로 10년간 EDM 장르에 매진하며 '한 우물'을 팠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만난 이들에게 함께 20주년을 맞은 소회를 물었다.

강원래는 "한때는 자살도 생각했으니 '아, 내가 살아있구나'라고 느꼈다"며 "클론의 데뷔 20주년을 위해 산 것은 아니지만 '잘 버텨왔구나'란 기분"이라고 말했다.

구준엽도 "난 클론의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며 "계속 EDM으로 특화한 우리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고 거들었다.

다음은 만담 같았던 클론과의 일문일답.


-- 컴백을 결심한 계기는.

▲ (클론을 데뷔시키고 이들의 히트곡을 만든 프로듀서) 김창환 형과 20주년이니 뭔가를 해보자고 얘기만 오갔다. 그러다가 준엽이가 만들어둔 EDM 트랙을 듣고 놀랐다. 창환이 형이 '클론으로 내면 딱이네'라고 얘기하면서 급물살을 탔다.(강원래, 이하 강)

▲ 우리가 '현진영과 와와'의 '와와' 출신이고 내가 디자인을 전공해 '안무를 짜라', '재킷 디자인을 하라'고는 했지만, 창환이 형이 '너희가 음악을 만들라'고 한 것은 처음이다. 음악을 음식에 비유하면, 우린 그때 자장면이 맛있는 것은 알지만 만들 줄은 몰랐다.(구준엽, 이하 구)

-- 신곡들은 어떤 스타일인가.

▲ 1990년대 댄스음악이 아니라 지금의 댄스음악을 클론이 하는 것이다. 주로 젊은층이 EDM을 즐기지만 쉽고 중독성이 강해 우리 또래도 공감해 줄 것 같다. 내가 DJ를 하면서 EDM에 매진한 지 딱 10년이다. 트랙을 만들고자 미디와 피아노를 배우는 등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한국어 가사가 EDM에 이질감 없이 잘 묻도록 신경 썼고 사운드도 외국 EDM에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10년간의 노력을 쏟아부어 감회가 새롭다.(구)

▲ 준엽이 덕에 나이 쉰이 다 돼 신나는 댄스음악으로 나온다. 주로 준엽이가 트랙을 만들고 창환이 형이 멜로디를 붙였다. 편곡은 전곡 준엽이가 했다. 준엽이가 '프로듀스 101' 시즌1의 히트곡 '픽 미'(PICK ME)의 편곡자란 사실을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강)

-- 5집 당시 휠체어 댄스가 감동을 줬다. 이번에도 춤을 선보이나.

▲ 후배들이 하는 순위 프로그램에 나가면 민폐일 것 같고, 음악 방송을 하더라도 퍼포먼스는 별로 없다. 뮤직비디오에서도 댄서들이 퍼포먼스를 한다.(구)

▲ 난 음악 방송보다, 여전히 싱글인 준엽이가 '미운 우리 새끼'에 나갔으면 좋겠다. 하하.(강)


-- '쿵따리 샤바라'(1996)로 가요 프로그램 11회, '초련'(2000)으로 4회 1위를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는데.

▲ '쿵따리 샤바라'로 '가요톱텐'에서 처음 1위를 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 같은 소속사이던 김건모 형이 회사를 나가 4집을 내고 골든컵을 받을 찰나에 우리가 1위를 했다. 당시 그룹 H.O.T와 젝스키스의 인기가 대단했는데 학생 팬들이 좋아하는 오빠들보다 10살가량 많은 우리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많이 보내줬다. 하하.(강)

-- 1990년대 후반 '쿨롱'으로 불리며 대만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니 한류의 원조다. 1·2집 히트곡을 모은 첫 음반이 1998년 대만에서 35만장 넘게 팔렸고 1999년 국내와 대만에서 낸 3집은 우리말 음반 최초로 해외에서 동시 출시된 사례였다.

▲ 대만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우리가 인기를 끌자 대만 신문 기자들이 '한류'란 단어를 처음 썼다고 한다. 1992년 한국이 대만과 단교한 이후여서 '침략'이란 뉘앙스가 가미돼 처음에는 긍정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대만과 단교한 나라에서 두 명의 남자가 와 문화를 점령한다는 식이었다.(강)

▲ 대만에 갈 때면 일본의 '욘사마'처럼 '클론이 왔다'고 보도됐다. 대만 교포들이 우리 덕에 편의점에서 김치를 판다고도 했다. 그런데 한국에선 우리의 대만 인기를 방송사 PD들이 안 믿었다.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과 한국 취재진이 대만에서 열린 공연에 와서 우리 순서 때 객석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서 놀라워했다.(구)

-- 그 시절 대만에 진출할 생각은 어떻게 했나.

▲ 대만 여가수 유키가 우리 노래 '도시탈출'을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대만 여가수 소혜륜이 김창환 형에게 곡을 받으면서 우리를 봤고, 공연 게스트로 초대했다. 그 무대에서 옷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는 등 한국에서 못하는 걸 다하며 신나게 놀았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후 광고도 찍고 앨범 내고 공연도 한 것이다.(강)


-- 인기 절정에서 강원래 씨의 사고로 팀 활동이 멈춰 섰다. 크게 좌절했을 텐데 원래 씨는 장애예술인 공연단 '꿍따리유랑단'을 꾸렸고 라디오 진행을 하고 지난해에는 경험담을 담은 장애인 인권 영화 '엘리베이터' 연출도 했다.

▲ 난 활동적인 사람인데 가만있으니 더 아팠다. '움직이자, 움직이자'고 되뇌었다. 뼈저리게 느낀 것은 '빠른 포기가 새로운 꿈을 준다는 것'이었다. 될 것으로 기대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택한 직업이 라디오 DJ로, 책도 읽고 사람들의 말도 많이 들어주게 됐다. 또 '천재가 쉬고 있구나'라고 스스로 용기를 주며 영화 등 옛날부터 하고 싶던 것들을 다 해보자고 생각했다. 이번 앨범도 11년째 하는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나도 열심히 산다'고 좀 더 떳떳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꿈에 대한 특강을 할 때 '난 꿈을 꾸고 있다. 영화 연출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클론으로 복귀도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다 이뤄졌다. 하나 더 이루고 싶은 것은 클론과 내 이야기로 뮤지컬을 제작하고 싶고, 딸을 하나 더 낳는 것이다. 그런데 송이(아내)가 나이가 있으니 힘들어한다. 하하.(강)

-- 역시 다른 길을 택한 구준엽 씨도 지금은 EDM 분야를 주름잡는 DJ로 성공했는데.

▲ 클론으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됐지만 음악이 너무 하고 싶었다. 하지만 노래를 잘 못하니 솔로로 나올 수도 없어 다른 형태로 음악을 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댄스음악을 워낙 좋아해 내가 춤을 안 춰도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 DJ를 시작했다. 외국 DJ를 보면서 트랙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작곡을 배웠다. 이번 앨범을 시발점으로 내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 같고, 음악계에 새로운 신(Scene)을 만들어보고 싶은 꿈도 꾼다.(구)

mimi@yna.co.kr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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