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 4세라고 '추방'…고려인 이산가족 만드는 재외동포법
부모와 함께 사는 4세 자녀 1천여 명, 만 19세 되면 한국 떠나야
고려인특별법은 지원 대상서 국내 체류자 배제…"모국서 차별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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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모국의 따스한 품에 안겼다고 가족 모두가 좋아했는데 4세대부터는 동포가 아니니까 출국하라고 합니다. 강제로 이산가족을 만드는 것이 어떻게 재외동포를 위한 법인가요?"
1992년 제정된 재외동포법 시행령은 국내 체류자격인 재외동포비자(F4)를 동포 3세까지로만 한정했다.
이로 인해 국내 거주 고려인 자녀는 가족 동반비자로 머물고 있지만 만 19세가 되면 체류신분이 없어지고 만다.
2013년 만들어진 '고려인 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하 고려인특별법) 역시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국내체류 동포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지 않으면 강제로 추방당할 수밖에 없는 억울한 상황을 호소하고자 고려인들이 뭉쳤다.
고려인 지원 단체로 구성된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기억과 동행 위원회'(기억과 동행위)는 모국에서의 차별만큼은 없어야 한다며 9일 재외동포법 시행령과 고려인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낸다.
◇ "추방 중단 위해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 시급"
도재영 기억과 동행위 상임대표는 "고려인 자녀들은 중도입국했거나 모국에서 태어나 공교육을 받고 자라고 있다"며 "가족도 여기 다 있는데 성인이 됐다고 떠나지 않으면 추방한다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 상임대표에 따르면 고3 자녀를 둔 고려인 부모는 한숨만 쉬고 있다. 곧 졸업인데 자녀를 어디에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모국에 남을 유일한 길은 대학에 진학해 유학비자를 받는 것인데 빠듯한 살림에 학비 마련이 쉽지 않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모국을 찾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실감은 더욱 커진다.
만 19세가 되면 가족 동반비자가 만료돼 가족을 남겨둔 채 홀로 대한민국을 떠나야 할 고려인 4세 자녀들은 전국적으로 1천여 명으로 추정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싶지만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재외동포법 시행령이다. 3조 2항에서 재외동포를 가리키는 외국 국적 동포의 정의를 '부모의 일방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라며 동포 3세까지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 대표는 "어린 청소년들이 곧 추방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서 어떻게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겠느냐"라며 "시행령은 국회의 의결이 필요 없으므로 정부가 신속히 개정해준다면 고려인에게는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체류 고려인 제외하는 특별법도 개정해야"
거주국에서 합법적인 체류자격 취득이나 정착 지원을 돕는 특별법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해외 거주하는 고려인만 대상으로 한다. 국내에 체류하는 4만여 명의 고려인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아무런 혜택을 못 받는 것이다.
기억과 동행위는 국내체류 고려인을 포함하고 영주권 취득을 간소화하며, 의료보험 혜택을 부여하는 등 국내 정착 지원을 확대를 내용을 특별법 개정 청원서에 담았다.
개정 단장을 맡은 안산시 원곡법률사무소의 서치원 변호사는 "고려인에게는 정부가 시행하는 한국어·한국문화 무료 강습 혜택이 전무하다"며 "모국에서 다문화가정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슬픈 현실만큼은 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는 9월 9일이면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1937년 스탈린에 의해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각지로 흩어진 고려인은 구소련 해체 이후 재이주를 겪은 데 이어 모국으로 건너와서도 또다시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고통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종헌 기억과 동행 사무국장은 "한국체류 고려인에게 모국이 또 다른 이산이 땅이 아니라 정착지가 되도록 배려가 필요하다"며 "강제이주 80주년을 기념해 오는 9월 17일에 개최하는 전국고려인대회가 고려인에게 새로운 희망이 날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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