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감염 의심' 오골계 전국 유통…또 사태 키운 '모럴해저드'
방역 체계 허술하고 폐사해도 신고 안 해
당국, 은폐·신고지연 농가 제재 강화 추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지난 겨울 전국을 강타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AI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허술한 방역 체계가 문제로 지적되지만 축산 농가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도 갑자기 폐사하는 오골계가 늘어나는데도 전국 각지로 유통하고, 재래시장에서 사 온 오골계가 폐사했는데도 즉각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AI 의심 가금류 유통
제주시 이호동에 있는 토종닭 사육 농가에서 오골계가 폐사했다는 신고가 처음 접수된 것은 지난 2일이다.
제주 동물위생시험소에서 AI 바이러스에 대한 간이 검사를 한 결과 'H5'형 유전자로 확인됐고,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정밀 검사 결과 고병원성으로 확인됐다.
해당 농가는 토종닭 7마리를 뒤뜰에서 키우고 있었다.
이 농장주는 지난달 27일 도내에서 열린 오일장에서 오골계 5마리를 샀고, 이틀 뒤인 29일부터 30일 사이 5마리가 전부 폐사했다.
그러나 농장주는 오골계 폐사 사실을 당국에 즉각 알리지 않았다. 지난 2일 기존에 있던 토종닭 3마리가 추가로 폐사한 후에야 당국에 신고했다.
오골계가 처음 폐사한 후 나흘 만에 신고한 것이다.
문제가 된 오골계는 전북 군산시 서수면 1만5천여 마리 규모 종계 농장에서 중간유통상 격인 제주 지역의 또 다른 농가를 거쳐 유통된 것으로 조사됐다.
군산 농가의 오골계는 제주 외에 양산, 파주, 기장, 진주, 서천 등 최소 6개 시·도에 유통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27일부터 제주 토종닭 농가의 의심 신고까지 최소 6일간 AI 바이러스가 무방비 상태에서 각지로 퍼진 셈이다.
늦었지만 제주 토종닭 농가는 신고라도 했다.
검사 결과 파주와 양산 등에서도 AI 간이 검사 결과 양성 반응이 확인됐지만, 이들 지역에서는 신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감염된 오골계가 유통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 AI의 '진원지'로 꼽히는 군산 농가에서는 지난달 20일부터 갑자기 하루에 20∼30마리씩 폐사했다.
평소 2∼3마리씩 폐사하던 것에 비해 10배로 늘어난 것이지만, 이 농가는 집단 폐사가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도 전국 각지에 오골계를 판매했다.
이 역시 심각한 '모럴 해저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농가 인식에 문제 있다"
'모럴 해저드' 문제는 AI와 구제역 등 가축 질병이 창궐할 때마다 지적돼왔다.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가축 질병의 피해를 줄이려면 철저한 소독 등 차단 방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심사례가 있으면 초기 대응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매년 막대한 피해가 반복되는데도 일부 농가에서는 '설마 내가…', '나 하나쯤은…' 이라는 생각으로 신고를 미루고 있다.
공들여 키운 자식 같은 닭이나 소, 돼지가 도살 처분될까 봐 두려워서, 혹은 살처분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을 피해 보려는 생각에 폐사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
일부 농장에서는 예찰이나 검사를 위한 방역 담당 공무원의 진입을 거부하는 등 방역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최근 구제역 사태 당시에도 일부 농가에서 착유량 감소나 유산 등 눈앞의 손실을 우려해 백신 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감염이 의심되는데도 외부에 판매하는 행태는 바이러스를 급속도로 퍼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지난해 12월 세종시 한 농장에서는 AI 의심 신고를 하기 직전 달걀과 닭을 대량으로 출하한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산하 AI 역학조사위원장인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학장은 "농가가 방역에 동참하고 의심사례가 있으면 당연히 신고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그동안 농가에 대해 온정적인 시각에서 대처해왔는데 처벌을 강화해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번 AI 발생과 관련해서도 일부 농가에서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재발 방지를 위해 소규모·취약농가, 전통시장 등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당국은 AI 신고 은폐, 지연 농가에 대한 벌칙 등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등록 가축거래 상인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고, 가축거래상인 준수사항 위반자에 대한 과태료 등 처벌 기준도 높이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 '방역구멍' 있었나…평시 방역체계 전환 하루 만에 또 발생
지난 4월 4일 충남 논산을 마지막으로 잠잠했던 AI가 약 두 달 만에 다시 발생하자 허술한 방역 체계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30일 농식품부는 '구제역·AI 특별방역대책기간'을 종료하고 1일부로 평시 방역 체계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대 규모 피해를 남긴 재앙 수준의 AI가 마침내 종식되는가 했지만 'AI 악몽'은 불과 하루 만에 되살아났다.
특히 군산 종계 농장의 AI 바이러스 유입경로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주로 AI가 발생하는 겨울이나 봄이 아닌 여름철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AI는 소규모 농가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방역 사각지대에서 바이러스가 여전히 활동 중인 상황에서 당국이 섣부르게 '평시 방역 체계'로 전환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농식품부는 5일 전국 가금 농가 일제 소독, 취약농가 집중점검, AI 발생 은폐·신고지연 농가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여름철 AI 대란' 우려는 커지고 있다.
doubl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