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정유라 영장 기각과 '불구속 수사' 원칙
(서울=연합뉴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수혜자로 꼽히는 정유라 씨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의 강부영 영장 전담 판사는 '정 씨를 구속수사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영장의 범죄 사실과 관련한 정 씨의 가담 경위와 정도, 기본적 증거들이 이미 수집된 점 등을 고려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강 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검찰은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하고 수업도 듣지 않은 채 학점을 취득한 혐의(업무방해)와 청담고 재학 시 결석 처리를 위해 허위 공문을 제출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를 정 씨에게 적용했다. 정 씨는 어머니 최순실 씨가 다 알아서 한 일이고 자신은 모른다고 했다. 법원은 일단 정 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검찰의 혐의사실 소명이 부족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법원의 판단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라는 것이다. 그래도 검찰 입장에서 영장 기각은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다.
정 씨는 여덟 달 동안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해 왔다. 정 씨처럼 범죄인인도협정에 따라 강제송환된 피의자한테는 보통 구속영장이 떨어진다. 검찰이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 같다. 국정농단 사건을 맡은 검찰 특별수사본부 본부장은 현재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겸직하고 있다. 윤 본부장은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돈봉투 회식' 사건 직후 현직에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국정농단 수사와 공소유지의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그런 윤 본부장이 취임하고 2주일도 안 돼 정 씨가 강제송환됐다. 원래 정 씨의 강제송환은 훨씬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정 씨는 갑자기 덴마크 법원에 항소를 포기했다. 검찰이 정 씨의 항소 포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 씨의 입을 열어 국정농단 재수사의 실마리를 풀어보려던 검찰의 계산은 초장부터 빗나가게 됐다.
이제 관심은 정 씨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할지에 쏠리고 있다. 검찰은 범죄수익 은닉, 외국환 거래법 위반, 뇌물수수 등 혐의를 추가해 재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는 뇌물 등 주요 혐의 사실을 재판 과정에서도 계속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정 씨를 구속 수사하면 결정적 진술을 받아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다. 어머니 최 씨의 입을 여는 압박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가담 정도는 가벼울지 모르나 정 씨는 국정농단 사태의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검찰이 정 씨 구속수사에 공을 들일 만한 이유는 여럿 있다.
검찰이 동일한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경우 웬만하면 떨어진다는 게 법조계의 통설이다. 검찰의 영장 재청구는 그만큼 수사상 꼭 필요하다는 의미도 된다. 법원도 검찰의 재청구 영장을 다시 기각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한다고 한다. 실제로 박영수 특검은 이재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영장 재청구 끝에 구속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이 정 씨의 구속수사에 매달리는 것이 법치주의 원칙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검찰의 과도한 권한을 상징하는 게 기소독점권과 영장청구권이다. 검찰과 같은 권력기관이 지나친 재량권에 의존하면 수사편의주의로 흐르기 쉽다. 인권 침해의 소지가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구속수사를 통해 국민의 법감정을 달래려 하거나 피의자한테 쉽게 진술을 받아내겠다는 발상을 한다면 그게 바로 재량권 남용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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