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과 육식의 황금비율은…신간 '채소의 인문학'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채소가 몸에 좋다는 건 현대인의 상식이 됐지만, 그 근거가 과학적으로 규명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식물은 자외선이나 미생물, 해충 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물질들을 오랜 기간 진화시켜왔는데, 이들 물질이 각종 생리 기능을 활성화해 인간에게도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물질에는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s) 혹은 파이토뉴트리언트(phytonutrients)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1970년대 중반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처음 사용했다.
신간 '채소의 인문학'(따비 펴냄)은 우리 민족의 '나물 문화'를 중심으로 문화, 영양, 과학 등 동서고금의 채소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저자는 한국식생활문화학회 회장을 지낸 정혜경 호서대 교수로 서구 영양학을 전공한 뒤 한국음식문화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다.
방귀를 잘 뀌게 한다는 무는 예로부터 소화제로 사용됐는데, 소화효소인 디아스타아제가 있어 소화를 촉진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삼겹살과 절친한 마늘에는 단백질을 변성시켜 소화를 촉진하는 알리신이란 물질이 들어있다니 과학적으로도 궁합이 맞다.
프랑스 사람들이 고기를 즐겨 먹으면서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는 건 포도주 때문이라는 데 이걸 '프렌치 패러독스'라고 한다. 이에 빗댄 '차이니즈 패러독스'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중국 사람들이 날씬하고 심장병에 잘 걸리지 않는 걸 가리키는데 이건 양파 때문이란다.
우리나라에서도 갈수록 양파 소비가 늘어 지난해 전통 채소인 무를 제치고 연간 채소 소비량 2위로 등극했다. 1위는 배추다.
토마토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임진왜란 직후에 들어온 고추만큼 오래됐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토마토의 순우리말은 '일년감'이다.
책에는 이 밖에도 '산가요록', '음식디미방' 등 고조리서에 나오는 채소 조리법, 과거 유명인사들의 채소 사랑, 그림과 문학 속에 그려진 채소 등 흥미 있는 얘기를 풀어낸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채소 섭취량 세계 1위다. 쌈과 각종 나물이 건강한 음식문화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지만, 과거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구황(救荒) 작물로서 의미가 컸다. 기근의 기(飢)는 곡식이 여물지 않아 생긴 굶주림을, 근(饉)은 채소가 자라지 않아 생기는 굶주림을 뜻한다.
저자는 "나물이 지구의 미래"라고 말한다.
전 세계 10억 명의 사람들은 굶주리는데 같은 수의 사람들은 영양 과잉과 비만으로 고통받는 오늘날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현대인의 식생활을 채식 위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엔 최근 폭증한 육식과 가공식품, 패스트푸드의 범람이 전 세계 사람들을 병들게 할 뿐 아니라 지구 환경까지 위협한다는 인식이 깔렸다. 실제로 육류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채소의 24배에 달한다고 한다.
건강을 뒷받침하는 채식과 육식의 황금비율은 8대2라고 설명한다. 한국 전통음식의 영양학적인 우수성과 특유의 풍미가 바로 이 황금비율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392쪽. 1만7천원.
abullap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