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부패수사기관]① 싱가포르 부패조사국·홍콩 염정공서
부패행위조사국은 싱가포르 '청렴국가' 토대
홍콩 염정공서는 전직 행정수반마저 수사해 구속
(방콕·홍콩 = 연합뉴스) 김상훈 안승섭 특파원 = 문재인 대통령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설치가 본격 추진되면서 이와 유사한 성격의 해외 반부패 수사기관들이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독립 초기부터 강력한 반부패법 토대 위에 민간과 공공부문의 모든 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부패행위조사국(CPIB)'을 가동하면서 세계적인 청렴 국가를 건립했다.
삼합회(三合會)로 대표되는 폭력조직과 경찰 간 결탁 등으로 골머리를 앓아온 홍콩에는 '염정공서(廉政公署ㆍICAC)'가 있고 대만·호주·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에도 부패 수사를 하는 전담기구가 있다.
부패 전담 수사기관은 이같이 동남아 국가에 몰려있고, 수사권은 있으나 대부분 기소권은 갖고 있지 않다.
이런 부패 수사 전담기구도 운영하는 국가 지도자의 강력한 부패척결 의지와 확고한 법적 토대, 그리고 국민적인 지지를 확보한 경우 성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정치적 보복의 대상이 되거나, 부패한 지도자에 의해 한순간에 무력화하기도 한다.
◇ '아시아 최고 청렴국'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조사국(CPIB)
"신속하고 확실하게"(Swift and Sure)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청렴국가' 싱가포르의 부패 수사 전담기구인 부패행위조사국(CPIB)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싱가포르는 지난 1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16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84점을 받아 덴마크, 노르웨이(이상 90점) 등에 이어 7위를 차지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10위 이내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싱가포르의 부패수사 전담기구인 CPIB는 영국 식민 통치 당시인 1952년 설립됐다.
1959년 독립 이후 혼란기에 만연한 부패를 일소하겠다는 '국부' 리콴유(李光耀) 초대 총리의 의지에 따라 CPIB가 총리실 산하로 배속돼 독립성을 확보했다. 이듬해 강력한 부패방지법이 제정돼 CPIB는 날개를 달았다.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도 깨끗해야만 외국 기업의 투자와 거래가 활성화하고, 이것이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다는 철학이 반영된 조처였다.
싱가포르에서 일반 형사사건은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기소하지만, 부패 사건은 CPIB가 민간과 공공부문을 가리지 않고 수사한다.
사건 관련 보고는 총리에게만 하므로 CPIB는 정부 내 그 어떤 조직이나 인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1965년 리 총리의 '오른팔'로 불렸던 탄키아칸 장관이 처벌을 받고, 1976년에는 리 전 총리의 친구인 위툰분 국무장관이 부패혐의로 기소된 것은 CPIB의 독립성 보장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CPIB는 부패사건 용의자를 영장 없이 구금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용의자의 가족과 대리인의 금융기록까지 조사할 수 있으며,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다른 부패 범죄는 물론, 경찰에서 접수한 부패 사건도 넘겨받아 수사한다.
이런 CPIB가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부패 사범에 대해 관용을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반부패법이다.
싱가포르의 반부패법은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동시에 처벌하는 '쌍벌' 규정은 물론, 주고받은 금품에 대가성이 없다는 것을 용의자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받은 뇌물을 불가피하게 돌려주지 못한 경우도 유죄로 추정한다.
명절에 주고받는 세뱃돈 형식의 '홍바오'(紅包)도 용납하지 않으며, 자국민이 외국에서 저지른 부패 범죄도 국내에서 발생한 것과 동일하게 처벌한다.
이처럼 부패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와 강력한 부패방지법 토대 위에서 CPIB는 싱가포르가 아시아 최고의 반부패 국가로 거듭나는 데 듬직한 길잡이 역할을 해 왔다.
◇ '행정장관 부패도 거침없이 수사' 홍콩의 염정공서
국제투명성기구의 '2016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홍콩은 77점으로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 2위(오세아니아 제외), 세계 15위를 기록했다.
한때 폭력조직 삼합회(三合會)와 경찰 간 결탁을 다룬 '누아르' 영화로 유명하던 홍콩이 안전하고 청렴한 도시가 된 데는 1974년 발족한 부패 수사기관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의 역할이 크다.
염정공서는 2015년 10월 성실의 상징인 나비 넥타이를 항상 맺던 도널드 창(曾蔭權·70) 전 행정장관(행정수반)을 부패혐의로 체포했으며, 지난 2월 역대 행정수반 최초 구속이라는 결과를 끌어냈다.
제약사 영업사원 출신인 창 전 장관은 넥타이 맬 시간을 줄이고 일할 시간을 늘리려고 항상 나비 넥타이를 매는 등 성실함으로 정평이 났었지만, 염정공서의 수사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염정공서는 렁춘잉(梁振英) 전 행정장관의 부패혐의에 대한 수사도 진행하고 있다.
염정공서는 1974년 2월 공직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염정공서법'에 따라 발족한 행정장관 직속 기관이다.
어떠한 정부 기관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책임자인 염정전원(廉政專員)은 행정장관으로부터 직접 지휘, 감독을 받는다.
염정전원 산하에 수사를 담당하는 집행처와 부패방지처(부패 예방), 대민관계처(반부패 교육) 등 3개 집행부처와 지원 부서인 1개 행정총부로 구성됐다.
염정공서 처장 3명도 행정장관이 지명한다. 인원은 총 1천400명에 달하며, 수사 담당인 집행처가 1천 명으로 3분의 2를 차지한다.
염정공서 요원은 특수직 공무원으로서, 일반 공무원과 다른 별도의 지위와 보수 체계를 적용받는다. 독립성 유지를 위해 경찰과 인사이동도 금지된다.
다만 부패 범죄를 경찰로부터 이첩받을 경우 필요하면 경찰과 합동으로 조사하는 등 경찰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염정공서 요원은 시민 신고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공무원의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할 수 있다. 경영자의 동의가 있으면 민간 기업의 배임 행위 등도 수사할 수 있다.
이들은 증거물에 대해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체포영장 없이도 48시간 동안 용의자를 구금한 채 수사할 수 있다.
집행처는 일단 수사를 개시한 부패 건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수사를 중단할 수 없다. 수사를 중단할 필요가 있으면 법조계와 회계업계 전문가 등 12명으로 구성된 별도 전문 자문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는 집행처 요원이 부패 용의자의 청탁을 받고 수사를 무마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염정공서는 요원의 권한 남용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 조사팀과 시민 신문고 제도를 두고 있으며, 전문위원회와 율정사(법무부 격)의 감독도 받고 있다.
염정공서는 강력한 수사권이 있지만, 용의자 기소 여부는 검찰을 거느린 율정사 몫이다.
염정공서가 기소권을 갖지 않는 것은 검찰과 경찰의 부패를 수사할 수 있는 염정공서에 과도한 권한이 몰리는 것을 막고, 이들 기관이 상호 견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meolakim@yna.co.kr,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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