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여성성을 품는 두 가지 방법…신영배·김상미 새 시집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신영배(45)·김상미(60) 시인이 나란히 네 번째 시집을 냈다. 시집 속 여성들은 관찰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시적 주체로서 당당히 발언한다. 그러나 말하는 방식과 목소리의 톤은 대조적이다.
신영배 시인의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문학과지성사)는 환상적이고 유동적인 이미지들로 여성의 공간을 구축한다. 여기에는 낯설고 모호한 단어 '물랑'이 한몫을 한다. 시인이 그동안 즐겨 써온 '물' 이미지의 유연함과 자유로움에 상상력을 보태주는 시어로 시집 곳곳에 등장한다.
"물랑// 달빛이 살에 닿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연주를 하지// 팔 하나를 나눠 가진 나무들의 세계/ 입 하나를 나눠 가진 새들의 노래// 꽃이 걷다 잠든 곳엔/ 발 하나를 나눠 가진 연인들이 아직 걷고 있네" ('물랑의 노래' 부분)
"미미 물을 흘리는 알몸이고 미미 물이 흐르는 잠 속이고 미미 사랑에 빠지는 계절이고 미미 이사 철이다 미미 물결이 일고 미미 잠깐 살아본다 미미 헤어질 것이고 미미 떠날 것이고 미미 물랑 미미 물랑" ('미미 물랑' 부분)
물랑과 짝을 이루는 수많은 소녀는 맨발로 걸어다니고, 숨바꼭질을 하고, 빈번하게 사랑도 한다. 하지만 사랑의 상대로서 사내의 자리를 찾기는 어렵다.
"소녀가 그녀의 손끝에서 달렸다/ 환청이 소녀의 귀를 탐하고 있다/ 그녀는 구부린다/ 환청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달을 끌며 길고 긴 동화를/ 달에 끌리며 물랑을/ 파란 새가 날았다/ 물랑을 쓰는 여자와 물랑을 듣는 소녀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 ('그녀와 소녀가 걸어갔다' 부분)
가끔 '군인'들이 출몰하지만, 사랑의 상대가 아닌 폭력적 주체다. "나는 도망쳐 오는 소녀를 얼른 잡아끌었다 소녀를 안고 웅크렸다 우리는 숨을 죽였다 세상에 군인들은 언제 다 지나가는 걸까" ('검은 물방울' 부분)
평론가 이찬은 "신영배의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를 통해서야 비로소 한국 시는 여성적인 것만이 누릴 수 있는 순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한없이 헌신적이고 정열적일 수 있는 희귀한 여성성의 세계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162쪽. 8천원.
김상미 시인이 14년 만에 낸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문학동네)에서 여성들은 보다 현실적인 세계에 발을 디딘 채 뛰놀고 싸우고 사랑한다. 소녀들은 고양이와 같은 "도도한 쾌활함"과 "앙큼한 독립성", "아름다운 야성"('고양이와 장미')을 지닌 채 금기를 넘나드는 황홀감을 노래한다.
"내 애인은 철로변 집에 살아요,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집과 똑같은 집, 그 집에서 살아요, 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랑을 나누어요, 기차 바퀴 소리에 놀라 들썩이는 야생 민들레 꽃밭 사이로 날아다니는 자디잔 흰구름은 정말 황홀해요" ('철로변 집' 부분)
천진해 보이는 소녀의 낭만은 종종 남성에 의해 위협받는다. "여자 시인 한 명쯤 자신의 대여성 명부에 넣고 싶어 빠짝 안달이 나 있던 남자의 서운한 시선"('지나친 배려')이나 "우리들의 가장 강한 천적이 되어 이 순간에도 자신들의 또다른 분신들을 마구마구 찍어내"는('천적') 아버지를 향한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다.
"우리 할머니 우리 엄마 우리 언니들처럼/ 오, 아름다운 나날들의 눈을 기쁘게 감길 수 있겠지요."('파리의 자살 가게') 그래서 연애가 아무리 황홀하더라도 죽음을 고민하며 의지할 상대는 결국 여성이다. 서러울 때, 어리고 독한 것들만 골라 양파를 까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린 눈에도 그 눈물이 너무나도 아파 나는 못 본 척 숨죽이며 양파만 깠다. 눈물 콧물이 떨어져도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가 왜 우는지, 어머니의 설움이 무엇인지 알기에 꼼짝도 않고 양파만 깠다. (…) 어머니는 양파를 까면서 울고 깐 양파를 썰면서도 울었다." ('위대한 양파' 부분) 128쪽. 8천원.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