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규 의사 밑엔 '우단동자'…철거 앞둔 슈즈트리 숨은 이야기
노숙인·태극기집회 장소에 작품 설치돼…10㎝ 더덕 그 새 30㎝로 자라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서울역광장 강우규 의사 동상 아래엔 진분홍 우단동자 꽃이 활짝 피었다.
1919년 9월 서울역에서 환갑 나이 강 의사는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 일행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총독 폭살에는 실패했으나 30여명 사상자를 내고 일본 군경을 공포에 떨게했다.
강 의사는 만주에서 교육사업을 하다가 조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거사를 하겠다고 자원했으며,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 집행됐다.
서울로7017 개장 기념 작품 '슈즈트리'를 만든 황지해 작가는 27일 "일제를 향해 폭탄을 던진 강 의사를 기리며 동상 손이 닿을만한 위치에 '당신을 따르겠다' 는 꽃말을 가진 우단동자를 심었다"고 말했다.
'슈즈트리'는 이번 주말을 끝으로 9일간 전시를 마치고 철거된다. 향을 내는 더덕은 10㎝로 심었는데 벌써 30㎝까지 키가 자랐다. 아이들이 헌신발에 심은 씨앗도 새싹을 틔웠다.
'슈즈트리'는 17m 높이 고가에서 내려와 서울역광장까지 총 100m길이로 이어진다.
작품이 설치된 서울역 2번 출구 앞은 태극기 집회가 열리던 장소이자 노숙인들이 오가던 곳이다.
설치를 시작하자 집회를 방해하지 말라는 민원이 쏟아졌다. 또, 고가 아래 으슥한 공간에 노숙인들이 남긴 흔적을 치우는 일도 관건이었다.
'슈즈트리'는 작품이 완성되기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가림막이 다 설치되지 않아 4월 하순 시작한 작업 중간 모습이 일반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지상부는 2m 높이 펜스를 쳤지만 고가에서 내려오는 부분은 공개됐다.
서울로7017 개장에 맞춰 이런 작품이 설치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시민들로서는 말 그대로 거대한 쓰레기가 매달린 것을 보고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작가 구상이 완성되기도 전에 슈즈트리는 '흉물'로 규정돼버리고 말았다.
시민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위에서 멀찍이 내려다봤고 고가와 헌신발, 녹지, 재생 등에 관한 작가 메시지를 찾아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시민정원사나 오가는 시민들이 헌신발에 식물을 심으며 작품에 동참한 의미 등이 묻혔다.
황 작가는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해우소'와 '디엠지' 작품으로 자연주의 플랜팅이라는 새 흐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2년 연속 금메달과 최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제1회 서울정원박람회에는 위안부 정원을 출품했다. 2013년 순천만정원박람회에서는 '갯지렁이 다니는 길' 작품으로 호평을 받고 주최측에서 감사패도 받았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시민이 보지 않을 선택권을 가질 수 없는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면서 세심함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도심 한복판에 대규모 작품을 설치할 기회를 내세워 재능기부 방식으로 추진하며 예술가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설비 용도로만 예산이 책정돼있어서 작가 개인에게 대금을 지불할 방법이 없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시는 당초 대행업체를 통해 '플라워 페스티벌'을 하려다가 자문을 한 황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걸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슈즈트리' 설치작업이 공개될 상황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았고, 논란이 불거진 후에도 작가 개인에게 쏟아지는 화살을 막아주지 못했다.
작년 11월부터 시와 작품 구상을 공유하며 작업해온 작가는 갑자기 대중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이 때문에 이번 기회를 계기로 서울시가 공공미술과 재능기부과 관련해 원칙을 다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울역고가 철거 공사 가림막 디자인과 서울로7017 브랜드를 만든 오준식 디자이너도 지역 주민으로서 좋은 뜻으로 재능기부를 했다가 논란에 휘말려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손혜원 국회의원은 페이스북에 "준식님처럼 유능한 디자이너가 서울시에 재능 기부하면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은 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슈즈트리'는 29일부터 2∼3일에 걸쳐 철거된다. 먼저 꽃 등 식물부터 한 데 모아놓고 신발과 비계를 치운다.
황 작가는 "꽃은 노숙인들이 도로로 뛰어들지 않도록 서울역 노숙인센터와 도로 사이 경계 등에 심는 등 중구 곳곳에 나누어 심고, 일부는 구례인문학교로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발은 당초 운명대로 소각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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