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보고관과 '대화' 약속 후 인권이사국 된 日…비판에 공격만
테러대책법안 '표현의 자유 침해' 지적에 "유엔 입장 아냐" 평가절하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지난해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 되기 위해 특별보고관과 건설적 대화를 하겠다고 서약까지 했으면서 정작 특별보고관의 자국 비판에는 전방위적 공격에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24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해 가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 입후보 시 인권이사회가 임명하는 특별보고관과 '건설적 대화'를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외무성 관계자는 도쿄신문의 취재에 "특별보고관과의 의미 있고 건설적 대화를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도 확실히 협력해 가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을 당시 유엔 회원국에 배포했다고 인정했다. 당시 선거 결과, 일본은 이사국으로 뽑혀 올해 1월부터 3년 임기를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최근 '감시사회' 논란을 불러일으킨 테러대책법안(조직범죄처벌법 개정안)에 대해 유엔 특별보고관이 우려를 표명하자 강력히 반발했다.
시민단체 '휴먼라이츠나우'의 이토 가즈코(伊藤和子) 변호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서약에 근거해 특별보고관의 우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공모죄 노(NO) 실행위원회' 측은 "이런 서약까지 해서 이사국이 됐는데도 특별보고관의 견해를 무시하는 듯한 관방장관의 발언과 정부 대응은 (서약과는) 정반대"라며 "이에 분노를 느끼며 국제사회에 부끄럽기까지 하다"고 비판했다.
테러대책법안은 조직적 범죄집단이 테러 등의 중대범죄를 사전에 계획만 해도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대상이 광범위해 수사기관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해 왔다.
조셉 카나타치 유엔 인권이사회 프라이버시권 특별보고관은 지난 1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테러대책법안은 프라이버시에 관한 권리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비판을 담은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난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카나타치 특별보고관이 총리에게 서한을 보낸 것에 대해 "서한 내용이 명백히 부적절하다"며 강력히 항의하는가 하면 반론 서한까지 보냈다.
지난 23일에는 노가미 고타로(野上浩太郞) 관방부 부장관이 "특별보고관은 독립된 개인의 시각에서 인권상황을 조사, 보고하는 입장이므로 유엔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고 평가절하했다.
노가미 부장관은 "일부 관계자에게서 얻은 정보만을 토대로 직접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서한을 발송했다"고 따졌다.
가네다 가쓰토시(金田勝年) 법무상도 "특별보고관은 개인 자격으로 조사를 행한다"며 "유엔 입장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나타치 특별보고관은 일본 정부의 항의에 대해 "졸속인 데다 심각한 결함이 있는 법안을 억지로 통과시키는 것을 정당화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반론을 언론에 공개했다.
일본 정부와 여당은 테러대책법안을 같은 날 중의원에서 강행 처리했다. (취재 보조 : 이와이 리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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