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는 회화보다 화려한 예술…읽지 말고 보세요"
소헌 정도준, 예술의전당서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복궁 광화문 안쪽에 있는 흥례문(興禮門)과 창덕궁 돈화문 너머에 자리한 진선문(進善門)의 현판, 2012년 복원된 숭례문의 상량문은 모두 소헌(紹軒) 정도준(69)이 썼다.
경남 진주에서 서예가 유당(惟堂) 정현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중(一中) 김충현(1921∼2006)에게서 서예를 배웠고, 1982년 제1회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난 20년간 해외에서 개최한 17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한국 서예의 아름다움을 알린 그가 이번에는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특별전 '정도준 - 필획과 구조(Stroke & Structure)'를 열고 있다.
작가는 전시가 시작된 지난 12일 기자와 만나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발명되면서 서예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며 "하지만 서예는 미술보다 더 화려한 예술로, 독자적인 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예를 감상할 때 문자에 매몰돼 책을 읽듯 뜻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검은색과 흰색으로 이뤄진 추상예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은색이 모두 똑같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농담과 붓놀림에 따라 다른 검은색이 나온다"며 "여백 또한 작품을 완성하고 남은 공간이 아니라 작가가 일부러 남긴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이런 소신이 담긴 작품 90여 점이 출품됐다. 특히 전시장 초입에 걸린 '태초로부터'는 한글 자음을 커다랗게 그린 서예 작품으로, 최근 한국미술의 대세로 떠오른 단색화 같은 느낌을 준다.
또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고, 다양한 서체를 구사한 작품도 많이 나왔다. 예컨대 충무공 이순신의 유언으로 전하는 '전방급신물언아사'(戰方急愼勿言我死)를 한자로 크게 쓰고, 그 아래에 작게 '전쟁이 급박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한글을 작게 적었다.
이외에도 작가가 시와 명구를 소재로 창조한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동국 서울서예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는 정도준 작가에 대해 "동아시아의 최고 예술인 서예 본연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면서도 서예의 기존 법칙을 깨는 실험을 해왔다"고 평가한 뒤 "서예전은 공모전 일색인데, 이번 전시는 완숙한 경지에 오른 작가가 서예의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6월 11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3천원, 만4∼18세·대학생 2천원. ☎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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