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외교공백 종지부 찍은 미·중·일 정상 통화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미·중·일 3개국 정상과 잇달아 전화통화를 했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으로서 한시도 뒤로 미룰 수 없는 당연한 절차였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불안해진 한반도 정세를 생각할 때 이들 3개국 정상과 통화는 단순한 '당선 축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미국이야 전통적 안보동맹국이니까 말할 것도 없지만 중·일 두 나라와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위안부 합의 등 민감한 현안들이 얽혀 있다.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의 직접적 이해 당사국임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전례는 없다고 하지만 한반도 4대 당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와도 정상 간 통화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한미 정상의 통화는 좋은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말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관계는 단순히 좋은 관계가 아니라 위대한 동맹관계"라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이른 시일 내에 미국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각각 특사 대표단과 고위 자문단을 상대국에 파견키로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시진핑 주석에게 "북핵 문제 해결은 포괄적·단계적으로 하고, 압박·제재와 협상을 병행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시 주석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이에 문 대통령은 "중국의 관심과 우려를 잘 안다"면서 양국 간 소통이 조속히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초청으로 조기 정상회담 개최에도 합의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의 통화에서는, 북한 문제에 대한 긴밀한 연대와 조기 정상회담 개최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아베 총리는 "책임을 갖고 실시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한국 내에 신중한 의견이 있다"며 완곡히 이견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우리 외교가에선 '코리아 패싱'이라는 신조어가 나돌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 일본 정상과는 통화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인 한국을 건너뛰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첫날과 둘째 날에 걸쳐 미·중·일 정상과 연쇄 통화를 한 것은, 탄핵 국면 5개월간의 정상 외교 공백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북한 문제를 최우선 당사국인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가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나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는 사실 대통령이 나서지 않고는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들 3개국과 각각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것은 그런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번 정상 간 통화는 형식상 문 대통령에 대한 '당선 축하' 전화였다. 그래서 3개국 모두 외교관례에 따라 우리 쪽에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일각에선 시 주석이 문 대통령한테 축하 전화를 한 것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시 주석이 한국의 대통령한테 당선 축하 전화를 건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번 통화에서 민감한 현안을 건드리기는 어려웠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세 나라와 각각 가질 정상회담이 본경기가 될 것 같다. 미국과는 한미동맹, 북핵 대책 외에 사드 배치 비용과 FTA 재협상 문제가 걸려 있다. 중국과는 사드 배치 문제가, 일본과는 위안부 합의 문제가 민감한 현안이다.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현안별 대책을 강구하려면 청와대 외교·안보 진용과 관련 부처 장관 인선을 서둘러야 할 듯하다. 사안별로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과제다. 허술한 대책을 들고 정상회담장에 들어가면 오히려 혹을 붙이고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미·중·일 3국과의 정상회담을 각각 언제, 어떤 순서로 가질 것인지도 간단히 흘려버릴 문제가 아닌 듯하다. 오랜 국정 공백으로 모든 것이 헝클어진 상태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철저히 준비해 한반도 정세를 하루빨리 안정시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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