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재즈는 민주적인 음악"
4년 만에 9집 '시 무브스 온'…미국 재즈 뮤지션들과 작업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지난달 30일 나윤선(48)은 쿠바 아바나에서 유네스코 주최로 열린 '국제 재즈 데이-올스타 글로벌 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에서 그는 재즈 뮤지션 에스페란사 스팔딩과 '베사메 무초'를 협연하고 카산드라 윌슨, 추초 발데스 등 출연 아티스트가 함께 꾸민 엔딩 무대에서 허비 행콕과 '이매진'의 인트로를 듀엣 했다.
"너무너무 떨렸어요. 굉장히 만나고 싶었던 뮤지션, 죽기 전에 무대에 함께 서보고 싶었던 뮤지션을 다 만났으니까요. 제가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보컬이든 연주자들이든 모두가 주인공이었고, 거리낌 없이 소통했으며, 모두 패밀리였죠. 재즈는 정말 민주적인 음악이라는 걸 새삼 느꼈어요."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너무 놀랍고 행복한 경험이었다"며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눈을 반짝였다. 그의 무대에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고 여느 동양인과 다른, 새로운 목소리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 해외 무대를 주름잡던 나윤선과 10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4년 만의 신보인 정규 9집 '쉬 무브스 온'(She Moves On)을 19일 세계에 동시 발매한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유수의 해외 무대를 누빌 때처럼 새로운 '재즈 커넥션'을 형성했다. '재즈 커넥션'은 인종과 국적을 넘어 음악으로 연결되는 재즈 뮤지션들의 관계를 뜻한다.
한동안 스웨덴의 울프 바케니우스와 라스 다니엘슨, 덴마크의 닐슨 란 도키 등 유럽 뮤지션들과 작업한 그는 이번엔 미국 뮤지션들과 랑데부를 했다. 프로듀서 겸 건반 연주자인 제이미 사프트와 기타의 거장 마크 리보, 노라 존스의 드럼 연주자 댄 리서 등이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앨범을 진두지휘한 사프트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자 뉴욕에서 3개월간 지내고서 돌아온 그는 재즈의 거장 존 존의 앨범을 듣던 중 사프트의 연주에 반했다.
"전혀 모르는 사이였죠. '나와 작업해볼래?'라고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더니 '언제든지 오라'는 답변을 줬어요. 며칠 뒤 그가 사는 뉴욕 인근으로 갔죠. 스튜디오가 있는 그의 집에서 한동안 음악만 들었어요. 그는 자신의 음악 뿌리라며 프랭크 시내트라, 조니 미첼, 밥 딜런의 음악을 들려주더군요. 그러면서 곡을 골랐고 어느 날 저를 엄청난 녹음 스튜디오로 안내했어요."
지난해 12월 그가 방문한 곳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튜디오인 뉴욕의 시어 사운드. 데이비드 보위, 밥 딜런, 스팅, 시규어 로스 등이 거쳐 간 곳이었다.
나윤선은 "그곳에 빈티지 마이크가 엄청나게 많았다"며 "가서 마음에 드는 마이크를 고르라고 하는데 이런 럭셔리함이 없었다. 게다가 사프트는 마크 리보를 비롯해 대단한 뮤지션들을 불러모아 줬다"고 떠올렸다.
스튜디오 녹음 첫날 그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이틀에 걸쳐 11곡 전곡을 녹음한 연주자들은 악보 하나 없이 모든 걸 아날로그 방식으로, 즉흥적으로 완성했다. '원테이크'(보컬과 연주를 한 번에 녹음하는 것) 한두 번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희미하게 '지지직' 하고 노이즈가 섞였지만 빈티지 사운드 그대로 매력있었다.
그는 "유럽에서는 음악을 진지하고 아카데믹하게 접근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물과 공기처럼 훨씬 편하게 접근했다"며 "그들은 '너나 우린 항상 준비돼 있지 않나'라며 녹음을 위해 따로 연습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음악을 물과 공기처럼 대하는 이유도 항상 준비됐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접근 방식이어서 새로운 깨우침이었다"고 설명했다.
앨범에 수록된 지미 헨드릭스의 '드리프팅'(Drifting), 폴 사이먼의 '쉬 무브스 온', 조니 미첼의 '더 돈트레더'(The Dawntreader) 등은 숨겨진 명곡으로 따로 편곡을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녹음한 순간의 즉흥 연주는 원곡의 새로운 해석이 됐다.
앨범 머릿곡과 끝 곡은 나윤선의 자작곡 '트래블러'(Traveller)와 '이브닝 스타'(Evening Star)가 채웠다. 또 다른 창작곡은 사프트 부부가 쓴 '투 레이트'(Too Late).
"'투 레이트'를 녹음하는데 악보 없이 휴대전화에 녹음한 멜로디만 들려주더군요. 20분 정도 들려주고는 멜로디가 기억나는 데로 마음대로 부르라고 했어요. 클래식을 공부한 사프트는 20년간 콩나물(음표)을 그린 적이 없다더군요. 하하. 감정이 느껴지는 데로 표현했는데 신기하게도 매끄럽게 완성이 됐어요."
그는 미국이란 재즈 종주국에서 작업하며 심리적으로 의미 부여도 했지만 결국 재즈의 생명력을 새삼 느낀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제가 한 여러 시도 중 하나였지만 만나서 바로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즈는 지구가 끝날 때까지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악보를 외우는 것보다 연주하는 순간 모든 뮤지션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으니까요."
또 이번 작업을 통해 "좋은 멜로디를 만들고 싶은 간절함이 정말 커졌다"고도 했다.
그는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과 25일 프랑스 노르망디를 시작으로 영국, 네덜란드, 독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투어를 개최한다.
"내년 4월까지 공연이 잡혀있어요. 연주할 때마다 다를 테니 1년 뒤 공연에서 앨범 곡들이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몰라요. 재즈는 살아있으니까요."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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