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정상회의 무대로 '北미사일·남중국해' 물밑 외교전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필리핀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를 무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막후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정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사태가 있다. 29일 아세안 10개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주요 현안을 논의하고 내놓을 의장성명의 내용에 따라 외교전의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아세안 외교장관들이 지난 2∼3월 2차례 성명을 통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우려를 표명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준수를 촉구한 점에 비춰볼 때 의장성명에 관련 내용을 담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원론적인 입장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북한의 전통 우방들이 예전보다는 못해도 북한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갈등과 대립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세안 의장성명 초안에 한반도 부분이 공백으로 남는 것은 회원국 간 입장 조정에 난항을 겪는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한국은 의장성명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을 규탄하는 내용이 담기도록 아세안 회원국들을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최근 미국이 북한의 김정남 살해사건과 미사일 발사 도발 등에 대한 비판 성명을 아세안 의장국인 필리핀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북한도 이에 맞서 외교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특히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를 한 달여 앞둔 3월 23일 아세안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을 비난하며 한반도의 '핵 재앙'을 막기 위해 북한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아세안 관련국들이 의장성명에 자신들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보이지 않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며 "아세안 회원국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입장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중국해 사태가 아세안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로 논의되지만, 반중국 기류는 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세안 의장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한 국제중재 결과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27일 밝혔다.
필리핀은 작년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로부터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두테르테 대통령은 다자 외교무대에서 PCA 판결의 언급을 피하며 중국과의 경제·방위 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친중국 행보에 미국의 맹방이던 필리핀까지 가세하면서 아세안의 친중 성향이 짙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의장성명은 이미 알려진 초안대로 중국을 언급하지 않고 남중국해 매립 행위에 대한 일부 회원국의 깊은 우려를 전하며 평화적 분쟁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작년 9월 라오스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때 나온 의장성명과 거의 같다.
남중국해 영유권과 항행의 자유를 놓고 맞서며 우군 확보에 공을 들여온 미국과 중국의 동남아 외교전에서 또다시 중국이 승리했다는 평가가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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