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연등에 담긴 뜻은…연꽃모양이란 뜻은 아닙니다
연등(燃燈), 미혹과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불' 상징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석가모니 부처 당시 난타(難陀)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은 부처님을 위해 공양을 올리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어 구걸로 얻은 몇 푼의 돈으로 작은 등과 기름을 사서 불을 밝혔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다가오자 왕과 귀족들이 밝힌 호화로운 등은 꺼졌으나 난타의 등불만은 홀로 꺼지지 않고 주위를 밝게비췄다.
석가모니 부처는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이 정성으로 켠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며 제자 아난에게 이 여인이 훗날 성불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우경(賢愚經)의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 나오는 유명한 빈자일등(貧者一燈) 이야기다.
전국 사찰은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연등(燃燈)을 사찰 안팎에 내걸어 아기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 또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연등회가 열리고 약 10만 개의 연등 행렬이 도심의 밤을 밝힌다.
연등회의 연등은 연꽃 모양이 많아 연꽃을 가리키는 '련'(蓮)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불을 붙이거나 태운다는 '연'(燃)자를 쓴다.
말 그대로 등불을 밝힌다는 뜻이다. 석가모니 시대에 이곳저곳을 다니며 깨달음을 전파한 부처님에게 올리는 공양물로 등을 켜놓았던 풍습에서 비롯됐다.
대한불교조계종 기획실장 주경 스님은 연등의 유래에 대해 "불교 경전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마을과 마을을 다니며 법문을 펼 때 밤늦은 경우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등을 들고나와 맞이했다는 구절이 있다"며 "고귀한 성자를 맞이하는 마음을 담아 아름답게 등을 꾸미고 내거는 풍습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또 불교에서는 중요한 행사 때 향·등·꽃·과일·차·쌀 등 6가지 공양물을 부처님께 올린다. 이를 육법공양(六法供養)이라고 한다. 이 중 등(燈)은 어둠에 싸인 중생의 미혹(迷惑)과 무명(無明)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해서 연등은 지혜의 불을 밝힌다는 뜻에서 반야등(般若燈)이라고도 부른다.
물론 연등 가운데는 연꽃 모양의 연등(蓮燈)이 많다. 흔히 '불교'라 하면 '연꽃'이 떠오를 정도로 연꽃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석가모니가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들어 보이자 제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웃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에 등장하는 것도 연꽃이다. 또 석가모니 탄생 때 어머니 마야 부인 주위에 오색 연꽃이 만발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주경 스님은 "불교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이 연꽃의 비유"라며 "진흙 속에서도 깨끗함을 잃지 않는 연꽃은 인간의 자성(自性)은 본래 깨끗하고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또 "물 밖으로 활짝 핀 연꽃은 부처의 깨달음을, 물속에서 아직 꽃 피우지 못한 연꽃은 중생을 상징한다"며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연등회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삼국유사에는 866년 신라 경문왕이 황룡사로 행차해 간등(看燈·불 밝힌 등을 보다)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 시대 연등 행사는 국가 행사로 치러졌다. 고려 태조가 남긴 '훈요십조'(訓要十條)에는 팔관회와 함께 연등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음력 정월 보름과 2월 보름에 국왕과 온 백성이 풍년을 기원하며 궁궐부터 시골까지 화려한 연등을 밝히고 잔치를 열고 가무를 즐겼다. 또 왕이 행차했다가 돌아오는 가두행진의 길 양옆에는 이틀 밤에 걸쳐 3만 개의 등불을 밝혀 불빛이 낮과 같이 밝았다고 한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 시대 국가적 연등 행사는 중단됐지만, 민간에서는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다.
현대식 연등회는 1955년에 시작됐다. 1975년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로 지정되며 연등 행렬 참가자는 대거 늘어났으며 연등회는 201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됐다. 연등회보존위원회 강문정 팀장은 "스리랑카나 태국 등 동남아 불교국가에서도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 연등을 만들어 걸고 불을 밝히는 전통이 있다"며 "하지만 행렬등을 들고 거리 퍼레이드를 하는 식의 연등회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5월 3일)을 봉축하는 연등 행렬은 29일 서울 도심을 밝힌다. 이날 오후 7시부터 동대문을 거쳐 종로 일대, 조계사까지 총 10만여 개의 행렬등과 장엄등이 빛의 물결을 이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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