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공 감독 "일본, 간토 조선인 학살 역사에서 지우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간토(關東·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재일동포 오충공(吳充功·62) 감독은 27일 최근 일본 정부가 당시 조선인 학살 관련 보고서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하다 들통난 사건에 대해 "조선인 학살 사실 자체를 역사에서 지우기 위한 시도"라고 규정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오래전부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실을 부정했고 지금도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결국 시도 자체가 들통나면서 다시 복구되기는 했으나 일본 정부의 변명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조선인 학살 관련 보고서 삭제와 비슷한 일들이 최근 들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며 "짧은 시간동안 발생한 일들은 결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시민단체가 간토대지진 50주년인 1973년에 도쿄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 공원에 세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철거하라는 주장이 일본 우익단체와 일본 정치권 안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최근 한 도쿄도 의회 의원은 추도비 안에 적힌 조선인 학살 내용의 진위를 따지며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을 펴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정부는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오 감독은 "추도비 철거 주장이나 보고서 삭제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거나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며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진상규명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공식적인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단순히 추도비 철거, 관련 자료 삭제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궁극적으로 일본 사회 안에서 조선인 학살이라는 사실을 모두 없애려는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오 감독은 "벌써 일부 희생자 유족들이 돌아가셨다. 얼마 남지 않은 역사적인 자료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한국 정부가 하루빨리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 감독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을 기록영화로 제작한 유일한 감독으로 첫 작품 '숨겨진 손톱자국'(1983), 두 번째 작품 '불하된 조선인'(1986)을 잇달아 내놨다.
현재 세 번째 작품 '1923 제노사이드(genocide·학살), 93년의 침묵'을 30여년 만에 다시 제작하고 있다.
그는 "하루빨리 작품을 내놓고 싶지만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 마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는 등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내년 간토대지진 학살 95주기 전에는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27∼28일 이틀간 열리는 오충공 감독 초청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록영화 상영회에 참석하기 위에 이날 제주를 찾았다.
b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