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표류하는 프로구단의 연고지 초등학교 배구팀 육성
한국 유소년 배구, 출산율 저하와 선수 감소로 '빨간불'
KOVO "초등학교 지원은 생존의 문제"…구단 "비전 제시 없는 지원은 곤란"
(춘천=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기업마다 배구단을 운영하는 목적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은 이익집단입니다. 지금 당장 고등학교에 지원하면 1년 뒤 선수 지명권을 얻을 수 있고, 초등학교에 지원하면 (1학년 선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12년 뒤에야 성과가 나옵니다. 아무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무작정 구단의 지원만 바라면 저희도 그룹에서 지원금을 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의 초등학교 배구 연고지 육성학교 사업 추진을 놓고 한 구단 실무 책임자가 토로한 속내다.
초등학교 배구발전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서로의 이익이 상충해 KOVO와 구단은 수년째 논의만 거듭한 채 제자리를 맴돈다.
KOVO는 26일 강원도 춘천시 강촌 엘리시안에서 2017년 통합워크숍을 열고 배구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논의된 내용 가운데 핵심은 초등학교 배구 지원이다. 출산율 저하로 모든 프로스포츠가 잠재적인 위협을 떠안고 있지만, 배구는 초등학교 선수가 줄어가며 특히 더 큰 위기의식을 느낀다.
올해 초등학교 배구팀은 남자부 40개, 여자부 27개다. 배구는 최소 한 팀에 14명은 돼야 자체 연습경기를 치를 수 있다. 그런데 남자부와 여자부 모두 팀당 평균 10명이 안 된다.
이에 KOVO는 2013년부터 KOVO컵 유소년 배구대회를 열어 지난해 12월까지 모두 9차례 대회를 치렀고, 구단 역시 연고지 초등학교에 용품과 창단 준비금 지원·현역 선수의 원포인트 레슨 등 단발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KOVO는 아예 13개 프로구단(남자부 7개, 여자부 6개)이 연고지에서 최소 1개씩 연고지 초등학교를 맡아 지원 육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KOVO 관계자는 "초등학교 배구 지원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구단도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만을 찾을 게 아니라, 배구판 전체의 미래를 함께 걱정하며 지원에 힘써줬으면 한다"며 구단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했다.
정작 지갑을 열어야 할 구단의 반응은 대체로 미온적이었다.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모기업 지원으로 운영하는 배구단 특성을 고려하면 연고지 초등학교 육성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A 구단 관계자는 "1년에 초등학교 배구팀에 들어가는 돈이 1천만원 안팎이다. 프로팀한테 큰돈은 아니지만, 아무런 보장 없이 무작정 쓸만한 액수는 또 아니다"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또한, B 구단 관계자는 "지금 초등학교 배구팀은 직장에 다니는 부모가 저녁이라도 먹고 오라고 가입해놓은 선수가 대다수다. 좋은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차라리 축구처럼 연고지마다 유소년 배구 클럽을 만들어 그곳을 지원하는 게 낫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단에서 초등학교 지원에 난색을 보인 가장 큰 이유는 당장 얻을 수 있는 게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KOVO는 연고지 초등학교 출신 선수 지명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지만, 당장 눈앞의 성적이 급한 구단에 초등학교 선수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결국, KOVO와 대한배구협회가 머리를 맞대 유소년 배구선수 발전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구단 역시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갑을 여는 수밖에 없다.
이날 워크숍에서 논의한 내용 가운데 KOVO와 구단이 합의한 내용은 실무위원회와 이사회를 거쳐 운영에 반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구단의 반발에 부딪히며 올해도 연고지 초등학교 배구팀 지원 사업은 표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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