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부터 '귓속말'까지…김홍파, 쉰 넘어 만개하다
'더 테러 라이브' 이후 종횡무진…부산사투리 살린 강한 역할로 화제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시작은 영화 '내부자들'이었다. 언덕 위에서 아래 세상을 굽어보면서 자신만의 배를 채우는 비릿한 재벌회장.(특히 '노출' 연기가 충격적이었다.)
그게 2015년인데, 2년 사이 그는 영화와 드라마를 눈코 뜰새 없이 종횡무진하고 있다.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38사기동대' '낭만닥터 김사부', 영화 '대호' '검사외전' '원라인' '임금님의 사건수첩' '특별시민'….
요즘은 SBS TV 월화극 '귓속말'에서 그야말로 '짱짱'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김홍파(55). 오십 넘어 만개한 이 배우를 26일 인터뷰했다.
◇ "관 속에도 들어갔다 나왔다"…연극 20여년, 버티고 버텼다
"스무살에 배우한다고 서울 올라왔어요. 극단 목화에서 20년 연기를 했는데 많이 배웠죠. 오태석 연출이 스승님이죠. 그분께 많이 얻어터지고 욕도 먹으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거기서 배우라는 세상에 눈을 떴죠."
'눈은 떴지만' 연극배우의 삶은 연기에 대한 열정만으로 버티기가 힘들다.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이고 왜 아니었겠냐. 제가 관 속에도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라는 여백 많은 답이 돌아왔다.
"신문 배달과 '노가다'는 기본이고 햄버거 가게 주방장 등 안 해본 일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죠. 어려웠지만 배우로서 꿈을 놓치지 않으려고, 배우가 뭔지, 삶이 뭔지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그러다 40대 중반에 비로소 연기에 눈을 뜬 것 같아요."
그렇게 내공을 다진 그는 2013년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통해 기회를 잡았다. 그의 나이 쉰하나였다.
"'더 테러 라이브'의 경찰청장 연기가 화제가 되면서 작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암살'의 김구 역을 거쳐 '내부자들'의 오회장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쭉 달리게 된 그는 특히 경상도 사투리를 한껏 살린 연기로 감칠맛을 더하고 있다.
"제가 부산 출신인데,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부산 사투리를 써서는 배우를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5년 정도 가족들도 안 만나고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서울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며 표준어를 익혔어요. 가족을 만나면 자동으로 사투리가 튀어나오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그러다 표준어에 자신감이 생긴 이후 다시 경상도 사투리 공부를 했어요. 언젠가는 사투리가 필요할 때가 있을 거다 믿었죠. 사투리도 사용을 안 하면 악센트나 단어를 잊어버려요."
'언젠가 사투리가 필요할 때'는 실제로 왔다.
"요즘 영화든, 드라마든 4~5년 사이에 작품들이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다루면서 과거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 중 경상도 사람이 많이 등장하게 됐어요. 대본과 시나리오에 경상도 말이 많이 사용되는데 그게 저랑 만나면서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귓속말'도 작가님이 경상도 사투리를 아주 잘 써주셔서 편하게 연기했습니다."
◇ '귓속말' 무소불위 강회장…"시원했고 힘들었다"
등장할 때부터 강하게 치고 들어오더니 퇴장할 때도 강렬했다. 말로는 죽마고우라면서 평생 아랫사람으로 하대했던 최일환(김갑수 분)에게 도자기로 뒤통수를 가격당해 죽은 그는 현재 커다란 가방 속에 시체로 들어있는 상태다.
'귓속말'에서 지난 24일 '장렬히 전사'한 강유택 회장은 시청자들에게 배우 김홍파를 강하게 각인시킨 역할이다. 금수저 출신의 무기 사업가인 강 회장은 거침없는 마초로, 목소리부터 힘이 넘치고 발성의 데시벨 자체가 남들의 두세 배다.
"원체 무소불위 한 사람이고 무서운 것도 없는 사람이라 거침없이 나가죠. 깡패의 느낌까지는 아니고 그냥 인성 자체가 시원시원하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인거죠. 연기하면서 속 시원했어요. 한껏 내지르니까. 하지만 발성에 워낙 힘을 주니까 많이 힘들더라고요. 항상 밑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려 크게 질러대야하니 몸이 지치더라고요. 촬영 끝나고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 잠을 많이 자게 됐습니다.(웃음)"
'귓속말'은 어린 시절 주인집 아들과 머슴의 아들로 만난 강유택과 최일환의 질긴 악연을 한 축으로 삼고 있다. 그 덕에 시청자는 김홍파와 김갑수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감상할 수 있다.
"김갑수 형님은 연극판에서 오랫동안 뵈었죠. 그런데 배우로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드라마 고사 지내는 날 '형님 제가 이번에 좀 까불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당연히 까불어야지'라며 편안하게 해주셨어요. 형님과 연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편했습니다. 소리를 지르면서도 끊임없이 최일환과 머리싸움을 벌여야 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죠. 촬영장에서도 늘 같이 웃으면서 호흡을 맞췄습니다."
강유택이 살해당하던 날 촬영 뒷얘기.
"극중 아들인 정일(권율 분)이가 촬영장으로 찾아왔더라고요. '아버지가 안 죽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어요. 그래서 제가 '나는 떠날 때가 됐다. 널 믿고 퇴장하니 네가 대를 이어 잘 해줘라'라고 했어요. 하하하."
◇ 드라마·영화 작품 쏟아져…"스케줄 조정이 힘드네요"
그는 '귓속말'에서 사망했지만, 다음달 10일부터는 SBS TV 수목극 '수상한 파트너'를 통해 부활한다. 이번에는 중앙지검장 역이다.
"아들이 살해당해서 그에 대한 분노와 슬픔으로 범인 잡는 데 혈안이 된 인물입니다."
드라마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는 더 바쁘다. 이런저런 작품에서 배역이 들어온다. 그의 소속사는 "스케줄 조정이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행복한 고민"이라며 웃었다.
"10년 전에는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 누가 날 불러줄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스케줄 조정하느라 힘드니 행복하죠."
특히 TV드라마의 파급효과를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TV의 파급효과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조심해야한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배우로서 더욱 긴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도 행동하는 데도 많이 신경을 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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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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