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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차가운 계산기로 만드는 '가성비'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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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차가운 계산기로 만드는 '가성비'의 경제학

신간 '차가운 계산기'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1970년대 초 석유파동 직후 연료값이 치솟자 미국 포드사는 '핀토'라는 소형차를 출시했는데, 사망자를 낸 차 사고 때문에 기업으로선 처음 살인혐의로 기소됐다.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포드는 1978년 사고 피해자에 대한 거액의 배상과 함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동차 리콜을 해야 했다. 여기엔 '그러시/사운비 보고서'로 알려진 악명 높은 포드 내부 보고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3년 작성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포드는 문제가 된 핀토의 연료탱크를 보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차 1대당 11달러로, 전체 1천250만대를 수리하는 데 드는 총비용을 1억3천750만달러로 산정했다.

반면 차 수리를 통한 사고 예방으로 절감할 수 있는 비용(편익)은 4천953만달러로 추산했다. 이는 차 수리를 하지 않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망자를 180명(1인당 보상비 20만달러), 화상 피해자는 180명(1인당 보상비 6만7천달러), 화재 차량은 2천100대(1대당 700달러)로 추정해 계산한 결과였다.

결국, 포드는 싸게 먹히는 길을 택했다. 차를 수리하지 않고 그냥 두기로 한 것이다. 사건은 리콜과 배상, 포드의 부도덕한 기업윤리를 비판하는 선에서 그친 듯 보이지만, 이를 통해 노출된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신간 '차가운 계산기'(열린책들 펴냄)는 포드의 리콜이 단순히 이윤만을 좇는 비인간적인 한 기업의 사례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포드는 순수 경제학적 관점에서만 보면 '비용-편익 계산' 결과에 따라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이 같은 경제적 효율성은 오늘날 기업 활동은 물론 일반인의 삶까지 지배하는 보편적 원리가 되고 있다.

책은 경제적 효율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인간을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행위자인 '경제적 인간'으로 상정한 뒤 비용-편익 계산을 제반 사회 문제들에까지 적용하도록 권장하는 주류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을 도마 위에 올린다.

오늘날의 경제학은 스스로를 만물의 과학이라고 내세우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도 불리는 비용-편익 계산을 만능의 열쇠처럼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환경, 교육, 질병은 물론 죽음, 연애, 결혼 등 생활의 내밀한 곳까지 침투해 삶을 지배하고, 도덕적 판단을 대신하는 고삐 풀린 경제학의 실상을 보여준다.

비용-편익 계산은 어떤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려면 모든 것에 가격을 붙여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경제적 논리에 지배당하고 휘둘리면서 인간은 점점 차가운 계산기로 변해간다.

저자인 필립 로스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경영학 부교수는 경제학이 상정하는 '경제적 인간'과 명확한 질서를 가진 '경제'라는 세계 자체가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지적한다.

그는 "경제학이 그 세계를 그렇게 잘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라는 세계의 조직과 구조와 통치 자체가 바로 그 경제학의 규칙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경제학이 현상을 기술하고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불필요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홍기빈 옮김. 384쪽. 1만7천원.

abullap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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