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먹여살리는데 신물"…伊북부 2개주, 자치권확대 주민투표
롬바르디아·베네토 주…중앙 정부로의 세수분담 불만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부유한 북부의 2개 주가 오는 10월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로베르토 마로니 롬바르디아 주지사와 루카 자이아 베네토 주지사는 오는 10월22일 자치권 강화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나란히 치르기로 합의했다고 21일(현지시간) 밝혔다.
두 지역의 주지사는 지역에서 거둬들이는 막대한 세금이 중앙정부에 흡수돼 낙후된 남부를 지원하는 데 흘러들어가는 것에 반발하는 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대변해 주민투표를 치르기로 했다.
이탈리아 최대 경제 도시 밀라노가 주도인 롬바르디아는 이탈리아 GDP의 약 20%를 기여하고 있고, 베네치아, 베로나 등이 속해 있는 베네토는 GDP의 약 10%를 점유하고 있어 이탈리아 20개 주 가운데 가장 잘 사는 지역으로 꼽힌다.
당초 자이아 베네토 주지사는 베네토 주가 이탈리아에서 분리 독립할지, 또는 지역에서 징수되는 세수 80%를 지방 정부의 통제 아래 둬야하는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정을 받으며 10월 투표의 조항은 포괄적인 자치권 확대를 묻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분리 독립 등 과격한 요구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압도적으로 통과될 경우 세금 분담 등의 예산 문제에 있어 중앙정부에 대한 지역 정부의 교섭력을 높이고, 내년 초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두 주지사가 속해 있는 정당인 북부동맹의 지지율을 높이는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과 난민에 반대하는 극우정당 북부동맹은 현재 12% 안팎의 지지율로 이탈리아 정당 가운데 제1야당 오성운동, 집권 민주당에 이어 3∼4위의 지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주민투표의 압도적 통과 시 주민투표를 주도한 자이아 베네토 주지사의 정치적 입지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부터 베네토 주를 이끌고 있는 자이아 주지사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총리직 사퇴 이후 분열된 우파 진영의 차세대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로, 현재 북부동맹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와 달리 온건하고, 실용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살비니 대표는 스스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북부에 지지세가 국한된 정당의 세력을 남부까지 확대, 전국 정당으로 세력을 넓힌다는 구상을 갖고 있지만, 10월 국민투표는 이런 구상과 상충되는 것이라 영향력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도좌파 정당인 민주당이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는 롬바르디아와 베네토 주가 이날 주민투표 날짜를 공개하자 "세수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이 납세자들의 세금을 쓸데없는 주민투표로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마우리치오 마르티나 농림부 장관은 "이번 주민투표는 단순한 정치 선전"이라며 "5천만 유로(약 600억원)를 주민투표에 쓰느니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토론을 추진하는 게 훨씬 나을 듯싶다"고 꼬집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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