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하고 싶은데…' 현실 벽에 가로막힌 탈시설 장애인들
인천시 초기 정착금 500만원 지원…'홀로서기' 대부분 실패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시 부평구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김모(48)씨는 지난해 초부터 '탈(脫)' 시설을 결심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적·지체 장애를 가진 그가 어렵사리 내린 결단이었다.
김씨는 자립을 원하는 장애인들이 독립하기 전 사회 적응 교육과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체험 홈'을 먼저 찾았다.
그마저도 인천에서 운영 중인 체험 홈 6곳은 열댓 명 남짓한 정원이 모두 차 들어갈 수 없었다. 올해 운 좋게 체험 홈에 들어가더라도 김씨는 완전히 독립한 후의 생활비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남이 모든 걸 결정하는 단체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서 시설을 거부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고 했다.
결국, 김씨는 자신이 30여 년간 생활해 온 장애인 거주시설을 떠나지 못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을 벗어나 자립하고자 하는 장애인은 늘어난 반면 부족한 행정 지원과 경제적 어려움에 막혀 좌절하는 사례가 많다.
20일 인천시에 따르면 시는 2008년 8월 제정된 중증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조례에 따라 탈시설을 원하는 중증 장애인에게 초기 정착금 500만원을 지원한다.
2014년부터 올해 4월까지 3년간 고작 17명이 이 정착금을 받았다.
인천시가 2013년 인천 장애인 거주시설에 있는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분의 1이 '시설을 벗어나고 싶다'고 응답한 것과 비교해보면 탈 시설을 원하지만 실패하는 장애인이 많다.
현재 인천에 있는 체험 홈은 6곳뿐이다. 각 정원이 2∼3명인데 장애인 1명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7년까지 이곳에서 생활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인천지역 내 장애인 거주시설에 있었던 장애인 중 주택을 따로 얻어 나온 이에게 주는 정착 지원금도 새로운 생활을 꾸리기에 적은 액수다. 가장 기본적인 도배·설비며 장애인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각종 시설마저 갖추기 어렵다.
김종인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처장은 "장애인들이 시설을 나와 생활하려면 화장실에 안전봉을 설치하고 문턱을 없애는 등의 기본적인 집 리모델링이 필요한데 이것만 해도 지원금이 바닥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시설에서 거주하던 생활을 자립생활로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전환 지원'도 빨리 풀어야 할 문제다.
시설에 있던 장애인들이 체험 홈을 거쳐 독립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민간 기관인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체험 홈을 위탁·운영하는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시설 거주 장애인이 탈 시설을 원해도 이를 신고하거나 알릴 만한 곳이 없는 데다가 이들을 체험 홈에 체계적으로 연계해주는 조직도 없다.
인천시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장애인 거주시설·중증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관계자로 '장애인 탈 시설 실무 협의체'를 꾸려 탈 시설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다음 달에는 체험 홈을 1곳 늘리고 초기 정착금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탈 시설 장애인들을 돕고자 체험 홈 운영비와 종사자 인건비 예산을 지난해보다 100% 이상 늘렸다"며 "장애인 거주시설과 체험 홈 등 관계 기관 의견을 수렴하면서 탈 시설 장애인을 실질적으로 도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cham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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