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EU가입 찬반 국민투표 추진…유럽과 거리두기
'술탄개헌' 직후 사형부활 이어 유럽과 관계 재설정 모드
"에르도안, 정치간섭 벗어나 경제관계만 유지하길 원해"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개헌 국민투표 승리로 권위주의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유럽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AFP통신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앙카라 대통령궁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그들은 지난 54년 동안 우리를 유럽연합(EU) 문 앞에 서 기다리게 만들었다"며 "필요하면 (EU 가입 여부에 대한) 신임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투표가 치러지더라도 결과는 작년 과반이 넘는 영국 유권자가 EU를 떠나겠다고 표를 던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와 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유럽인들이 아닌 터키인들이 말하는 것이라며 EU의 생각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터키는 EU 가입을 숙원으로 삼고 있었으나 작년 쿠데타를 진압한 뒤 배후세력 숙청 과정에서 불거진 법치, 기본권 훼손 논란 때문에 목표가 더 멀어지고 말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에 불만을 품으며 EU가 가입의 자격조건으로 제시한 사안들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개헌 국민투표 승리를 선언한 지난 16일 밤에도 EU가 금지하는 사형제의 부활을 즉시 총리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터키 내각도 이날 최고 보안기구인 국가안보회의의 권고를 받아들여 국가비상사태를 3개월 추가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쿠데타 배후 수사와 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운영되는 국가비상사태는 터키의 국민 기본권을 해치고 있다는 EU의 비판을 받는 조치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번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사실상 무소불위 권력을 손에 넣게 되자 EU 가입이 이미 물건너간 게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EU 회원국 내에서는 에르도안의 장기집권에 따른 인권침해·법치훼손을 우려하며 터키와의 가입협상을 백지화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세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개헌 국민투표 결과는 EU에 반대한다는 명백한 신호를 준 것"이라며 터키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확실힌 것이 대표적 예다.
EU 회원국들은 그동안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터키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했다.
하지만 작년 3월 터키와 맺은 난민송환 협정이 깨질 것을 우려한 EU 집행위원회의 중재로 간당간당하게 가입 협상을 진행해왔다.
전문가들은 에르도안 정권의 잇따른 도발적 행위가 EU와의 관계를 백지화하기보다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싱크탱크 카네기유럽의 방문교수이자 전직 터키 외교관인 시난 울겐은 "이는 에르도안이 터키와 EU와의 관계를 전적으로 경제적인 관계로 전환하길 원한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적 이슈를 배제한 채 순전히 경제만 집중하는 관계는 터키와 유럽에 모두 위험하다며 이는 EU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viv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