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대신 여유를…탈모 경험담은 그림책, 아이와 함께 보세요"
새 그림책 '중요한 문제' 펴낸 조원희 작가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문제는 정수리 쪽에서 500원짜리 동전 만한 크기로 시작했다. 원형탈모증에 걸린 수영강사 네모씨에게 의사가 말했다. "심각하네요.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통풍이 중요하다고 해 모자를 벗었다. 땀을 내지 않으려고 자전거 출퇴근은 물론 새벽 달리기와 주말 등산도 그만뒀다. 뜨거운 물에 목욕하지 못하게 됐고 동물의 털도 탈모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반려견 쟈니윤과 작별했다. 커피와 초콜릿을 제외한 검은색 음식을 꾸역꾸역 먹었다. 의사 처방에 따르다보니 다른 문제들이 하나둘 생겼다.
수영장에서 회원들이 웃을 때마다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선생님 머리에 구멍이 났다며 달려드는 아이들이 더이상 귀엽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데 상황은 거꾸로만 갔다.
작가 조원희(38)의 그림책 '중요한 문제'(이야기꽃)는 수영강사 네모씨가 탈모와 싸우며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뭔지 깨닫는 이야기다. 네모씨는 머리카락을 지키기 위해 따뜻한 커피와 초콜릿 한 조각, 반려견의 복슬복슬한 감촉 같은 소박한 즐거움을 버렸다. 네모씨는 너무 많은 걸 잃고 스트레스만 잔뜩 얻었다가 마지막에 가서 소중한 것들을 되찾는다. 밀어버린 건 머리카락이자 집착이었다.
이야기는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나왔다. 작가는 수영장에 다니던 3∼4년 전 원형탈모가 생겨 병원 치료를 받았다. 수영강사는 수영모를 썼을 때와 벗었을 때 스무 살은 차이가 나 보이는 남성형 탈모증 환자였다.
"의사가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하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의사 말을 지키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집착보다는 여유가 오히려 좋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의사가 중요한 문제라고 한 게 누군가에겐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죠."
색상 차이가 큰 원색들을 대비시킨 그림은 메시지에 강렬한 힘을 보탠다. 작가는 선명한 인상의 그림으로 진지한 주제를 전달해왔다. 지난달 아동서적 분야 권위있는 상인 라가치상 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은 '이빨 사냥꾼'은 코끼리에게 사냥당하는 어린이의 꿈을 통해 인간의 탐욕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아이들이 읽고 이해하기엔 너무 무겁고 어려운 주제일 수 있다.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탈모증은 성인 남성의 최대 고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빨 사냥꾼'에서 밀렵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인간과 코끼리의 입장을 뒤바꾼 설정은 단순하되 충격적이었다. 주로 착하고 예쁜 이야기와 그림으로 안전하게 교훈을 전하는 국내 그림책 시장에선 '튀는' 작품들이다.
이런 점 때문에 작가의 책들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만한 그림책으로 꼽히기도 한다. 작가는 "일부러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쓰고 그리는 건 아니다. 독자층을 정하고 작업하지 않는다. 관심있는 소재나 주제로 완성하고 나서 보면 아이들에게 조금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단어를 손볼 때는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문제'는 3년쯤 전에 쓰고 그린 작품이다. 지금은 미움과 로드킬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그리고 있다. "볼 때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게 그림책의 매력 아닐까요. 30여 쪽 분량에서 할 수 있는 실험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런 매력을 찾아가며 작업하고 있어요." 48쪽. 1만2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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