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의 60년 연기 인생…"재능·근성 갖춘 연기자의 표본"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는 안성기(65) 이름 앞에는 '국민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다섯 살 때 데뷔해 지금까지 찍은 영화만 130여 편. 60년간 한우물을 파며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영화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성기의 데뷔작은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다. 이는 배우 김지미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당시 5살 꼬마였던 안성기의 영화 출연은 우연히 이뤄졌다. 아역배우를 찾고 있던 김기영 감독은 평소 친분이 있던 영화기획자 안화영 선생의 집에 놀러 갔다가 본 아들 안성기를 떠올리고, 출연을 제의했다. 안화영과 김기영(1919∼1998)은 서울대 연극반에서 함께 활동했던 사이다.
'황혼열차'에서 고아원생으로 나온 꼬마 안성기는 첫 촬영에서 손을 들고 벌을 받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꼬마는 촬영장에서 웃고 장난을 쳤다. 그러자 스태프들이 벌을 받는 장면이라고 일러주며 분위기를 조성하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정 연기를 했다고 한다. 안성기의 데뷔 때 모습은 지금은 볼 수 없다. 당시 자료가 남아있지 않는 탓이다.
안성기는 7살 때 출연한 '10대의 반항'(김기영·1959)으로 아역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 영화로 그는 제4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서 소년특별연기상(아역상)을 받았다.
이후 '하녀'(김기영·1960)에서는 개구쟁이 모습으로, '모자초'(박성복·1962)에서는 소년 가장으로 출연하며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다.
안성기는 10대 중반까지 약 30편의 영화에 얼굴을 내밀며 꾸준히 연기활동을 했다. 당시 한국 영화계에는 아역배우가 거의 없던 터라 그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안성기는 그러나 고등학생 때부터 학업에 매진해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한다.
고교와 대학 시절을 포함해 약 10년간 연기 공백을 가진 그는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로 본격적인 성인 연기자로 돌아온다.
이후 '고래사냥'(배창호·1984), '깊고 푸른 밤'(배창호·1985), '기쁜 우리 젊은 날'(배창호·1987), '칠수와 만수'(박광수·1988), '개그맨'(이명세·1988), '남부군'(정지영·1990), '하얀전쟁'(정지영·1992), '투캅스'(강우석·1993) 등 수많은 작품에서 진지한 연기부터 코믹 연기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선한 눈매와 자상한 미소가 인상적인 그는 박중훈과 함께 출연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1999)에서는 악역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무사'(김성수·2000), '부러진 화살'(정지영·2011), '화장'(임권택·2014), '사냥'(이우철·2015), '필름시대사랑'(장률· 2015) 등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한국영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안성기의 60년 배우 외길은 뛰어난 연기력과 성실함,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승경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사연구소 연구원은 "그의 연기는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 어떤 작품에서든 안성기라는 사람보다는 작품이 먼저 보이게 연기하는 배우"라며 "그만큼 작품 속 캐릭터를 잘 표현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안성기만큼 후배들을 긴장시키는 배우는 없을 것"이라며 "재능과 근성을 겸비한 연기자의 표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 후배들과 스태프들을 살뜰히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배우는 "배우를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불안할 때마다 안성기 선배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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