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조끼 벗어준 그 뜻처럼"…어린이 후원·장학금 신설
세월호 의인들이 남긴 '유산' 사회 곳곳서 희망의 씨앗으로
안전 관련 대학강의 개설도…유가족 "희생정신 기억됐으면"
(전국종합=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 대피를 돕다가 가라앉는 배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세월호 의인'들이 준 깊은 울림이 메아리로 남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의인들은 떠났지만 그들의 유산은 참사 3주기를 앞둔 올봄 사회 곳곳에서 다시 희망의 씨앗을 움트게 하고 있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이던 정차웅(17)군은 3년전 세월호가 기울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는 등 다른 학생들을 구하다가 생일을 하루 앞두고 끝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정군의 부모는 이듬해인 2015년 초부터 정군이 평소 가깝게 지내다가 함께 희생된 최성호, 이준우, 김건우, 이재욱, 김제훈 군의 유가족과 함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각자 자녀 이름으로 매달 2만∼5만원을 후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돕고 있다.
먼저 후원을 시작한 최군 등의 유가족에게서 재단을 소개받고 동참한 정군 부모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지원한 정군 장례 당시 "세금으로 치르는데 어떻게 비싼 것을 쓸 수 있느냐"며 최하등급의 수의(壽衣)를 아들의 마지막 길에 입히는 등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 귀감이 되기도 했다.
세월호 승무원으로 일하다가 "승무원은 맨 마지막에 나가는 사람이야. 너희 다 구하고 나서 그때 나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박지영(22·여)씨의 모교인 수원과학대는 토목설계와 교량설계 분야에 안전사고의 조사·분석을 접목한 강의를 지난해 개설했다.
수원과학대는 애초 박씨를 기리고 참사 재발을 막고자 120명 정원의 재난안전 학부를 신설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자 강의로대신하고 있다.
이 대학에 따르면 이들 강의를 수강한 학생 39명 가운데 15명이 시설물 안전관리와 안전설계 분야에 취업했다.
대학 측은 또 2015년부터 '박지영 봉사장학금'을 신설해 학기마다 봉사와 희생정신이 투철한 학생 2명을 선정해 지급하고 있다.
강의실 등에 의인의 이름을 붙여 고인이 몸소 실천한 살신성인의 정신이 길이 남도록 한 경우도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구하다가 숨진 남윤철(35) 단원고 교사가 졸업한 국민대는 '남윤철 장학금'을 신설한 데 이어 남 교사가 학부생 시절 전공 수업을 자주 들었던 강의실 한곳을 '남윤철 강의실'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비교적 탈출이 쉬웠던 세월호 5층 객실에 머물다가 학생 숙소가 있던 아래층으로 내려가 제자들의 대피를 돕다가 목숨을 잃은 전수영(25) 교사가 나온 고려대도 교내에 '전수영 라운지'를 만들어 전 교사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동국대는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정작 자신은 구명조끼 없이 숨진 채 발견된 동문 최혜정(24·여) 교사를 위한 추모비를 세웠고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세월호에서 일하다가 다른 승객을 구하고 숨진 김기웅(28)씨의 모교 인천대는 김씨 이름을 딴 세미나실을 지정해 숭고한 희생정신을 학생들이 본받도록 하고 있다.
최 교사의 아버지는 "학교 측에서 딸이 잊히지 않도록 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딸의 후배들이 딸이 보여준 희생정신을 마음속에 간직한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없이 값진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zorb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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