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균 병원성 원리 일부 규명…"RNA 외피가 면역 체계 교란"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인체의 면역 체계를 무력화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공포의 백색 가루' 탄저균이 그토록 치명적인 이유 중 일부가 규명됐다.
박진모 하버드 의대 교수와 마크로젠 생명정보학연구소 김창훈 박사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탄저균 포자 표면에 다량으로 존재하는 유전물질의 일종인 리보핵산(RNA)이 숙주의 면역 체계를 속여서 교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
병원체가 숙주의 체내에 침투하면 대개 첫 면역세포인 백혈구(대식세포)의 공격을 받아 제거되지만, 탄저균은 그렇지 않다.
탄저균은 포자 상태로 침입했다가 번식이 가능한 상태로 바뀐 후 대식세포의 공격을 받더라도 이를 잘 견디고 살아남아 번식하면서 치명적 독성을 나타낸다.
연구팀은 숙주 체내의 대식세포가 탄저균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탄저균 포자의 가장 바깥 층에 있는 RNA에서 찾았다.
일단 탄저균 포자가 숙주 체내에 들어오면 숙주의 대식세포가 탄저균 포자의 RNA 분자를 인식하며, 이 과정이 나중에 번식 가능 상태로 바뀐 탄저균에 최적화된 방어 기제를 오히려 방해하고 엉뚱한 면역 반응을 유발해 대응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탄저균 포자는 제1형 인터페론이라고 불리는 면역 신호 전달 분자의 생산을 활성화한다. 제1형 인터페론은 포자에서 발아해 번식 가능 상태로 바뀐 탄저균에 대항하는 면역능력을 저하하기 때문에 활성화할수록 탄저균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
연구팀은 제1형 인터페론 생성을 유발하는 RNA 외피층을 없애면 탄저균 포자의 치명성이 줄어드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면역 체계를 교란하기 위해 유사한 전략을 사용하는 다른 병원균의 포자가 있는지를 연구할 예정이다. 또 탄저균 포자의 면역 교란에 대처하는 치료법도 연구하기로 했다.
이번 탄저균 병원성 원리 규명은 그동안 진행된 수많은 연구 중 RNA 분자에 관한 부분에 한정된 것이다. 연구 결과는 의학 및 면역학 분야 국제학술지 'JEM'(The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에 게재됐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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