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수립 100주년 앞두고 기념관 건립 난항…'국립 vs 시립'
서대문구의회 터에 기념관 신축 추진…"2019년 첫삽 뜰 듯"
서울시 "국립시설로 건립해야"…政 "서울시 땅에 지으면 지원"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우리 헌법이 그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2년 뒤면 수립 10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 임시정부를 기리는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민족단체, 애국지사, 학계 등 민간이 먼저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나섰다.
서울시도 기념관 부지를 제공하려 예산을 편성하는 등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기념관 건립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념관 위상을 놓고도 정부는 임정 기념관 건립 사업을 국가사업으로 추진하지 않고 서울시나 민간이 추진하면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다.
◇ 민간·서울시가 발 벗고 나섰지만, 정부 소극적
임정 기념관 건립 필요성은 200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조직되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임정 수립 100주년에 맞춰 기념관을 완공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는 인식이 퍼지며 민족단체 등이 2015년 11월 임정 기념관 건립추진위를 발족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념관 건립 사업 추진은 순조롭지 못했다.
추진위는 작년 1월 국토교통부가 반환 예정인 용산공원에 추진하는 콘텐츠에 임정 기념관을 짓자고 응모했지만, 특별법 등 제도 미비를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국가보훈처에 신청한 추진위 법인설립 요청도 그해 3월 보류됐다. 기념관 부지가 확보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추진위가 국회를 설득해 타낸 기념관 건립 관련 예산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국고로 환수됐다.
지난해 국회가 타당성 조사·설계비 등 명목으로 배정한 10억원 가운데 보훈처는 2천만원을 기본용역비로 지출하고 나머지 9억 8천만원은 국고에 반납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11일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 추진위가 발로 뛰며 타낸 피 같은 예산을 고스란히 국고로 반납하는 걸 보면서 정부가 과연 기념관을 건립할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보훈처 측은 "기념관 부지 확보 등이 늦어지면서 타당성 조사 비용 등으로 잡힌 예산을 집행할 수 없었다"며 "안타깝지만, 규정에 따라 예산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올해 추진위가 국회에 요청해 다시 확보한 예산 10억원으로 본격적인 설계 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다.
◇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임정기념관 신축 가닥…"2019년 첫삽"
보훈처와 서울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위원회 등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무 부처인 보훈처는 작년 말 임정 기념관 건립을 위한 기본용역을 마쳤다.
용역 보고서는 일제 침략과 식민 지배를 물리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를 기리고 임시정부 활동을 국내에서도 조명하기 위한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완공 목표 시점은 임정 수립 100주년인 2019년으로 잡았다.
부지는 서울 서대문구의회 자리가 최적지로 꼽혔다.
인근에 서대문형무소와 딜쿠샤, 독립문, 경교장 등 역사적 현장이 밀집해 있어 역사교육과 연계하기 좋고, 서울시가 구의회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관련 예산을 확보한 것 등이 반영됐다.
기념관은 구의회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하거나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이 모두 가능할 것으로 판단됐다.
신축할 경우 2019년 개관을 위해선 관계 기관 간 행정절차가 긴밀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리모델링의 경우 2019년 4월 개관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다.
초기에는 임정 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사업 추진이 늦어지면서 최근에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기념관을 제대로 신축하자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추진위 관계자 "리모델링을 해도 100주년에 맞추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이왕 지으려면 임시정부 위상에 맞게 제대로 짓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추진위 내부 의견이 모였다"며 "2019년 첫 삽을 뜨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보훈처 관계자도 "현재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는 임정 수립 기념식 등 1천석 규모의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강당 등을 갖추기 어렵다"며 "기념관의 특성과 성격을 잘 살리도록 설계해 새로 짓는 것이 적당하다"고 말했다.
◇ 건립·운영 놓고 '국립' vs '시립' 논란
건립과 운영 방식을 놓고도 건립위·서울시와 정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행 법규상 국유지에 임정 기념관을 지으면 국가가 관리하는 국립 시설이 되고, 시유지에 지으면 시립 시설이 된다.
이 때문에 시는 현재 시유지인 서대문구의회 땅을 국유지로 바꾼 다음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토지 교환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현행 공유재산법과 국유재산법은 기관 간 행정재산을 교환할 수 있게 돼 있다.
시는 작년 공시지가 기준 120억원 상당인 서대문구의회 5천695㎡와 중랑물재생센터와 동작구 수도자재관리센터에 흩어져 있는 맹지 1만 2천45㎡(120억원 상당)를 교환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작년 초부터 이런 입장을 수차례 전달했고, 작년 말 정식 공문까지 보냈지만, 보훈처는 기재부가 토지 교환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시유지에 기념관을 지어 국가에 기부채납하는 방법이 있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현행법상 이는 불법이어서 불가하다고 맞섰다.
기재부는 서울시가 국유지와 교환 없이 부지를 제공하면 건립 비용을 대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건립 비용을 누가 대느냐도 문제지만, 임시정부 기념 시설을 국가가 관리하지 않는다면 격과 위상에 문제가 있다"며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인식해 적극 추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건립위 관계자는 "정부가 여전히 기념관 건립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최근 건립위 자체 예산을 사용해 임정기념관 건립 관련 기본계획 용역을 발주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용역 보고서가 나오면 보훈처에 전달해 기념관 건립이 속도를 내도록 지원하겠다"며 "2019년 완공은 물 건너갔지만, 그해 기념관 기공식을 해 첫 삽을 뜨는 것은 가능하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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