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궁기' 배곯는 야생동물들 먹이 찾아 목숨 건 도심行
먹이 부족 멧돼지·고라니 도심 배회하다 로드킬·사살
"개체수 조절, 서식지 확보해 인간과 공존 모색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먹이가 부족한 '춘궁기', 봄은 야생동물에게 시련의 계절이다.
먹이 활동이 활발해진 야생동물들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민가로 내려왔다가 사살되거나 로드킬 당하는 사례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 탓에 살아갈 터전을 잃어버린 야생동물들이 먹잇감을 찾아 인간이 사는 세상으로 접근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하다.
지난 2일 오전 3시 4분께 서울 광화문에 암컷 멧돼지 한 마리가 출현했다.
길이 1m, 몸무게 60∼70㎏인 숲 속의 포식자가 서울 한복판을 헤집고 다니는 광경에 화들짝 놀란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서울 도심에 출몰했던 이 멧돼지가 죽음을 맞이한 곳은 도로였다. 운행 중이던 택시와 충돌한 뒤 쓰러져 숨을 거뒀다.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인근 북한산이나 인왕산에서 서식하던 멧돼지가 먹이를 찾으러 도심에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김의경 연구원은 "먹이 활동에 치중하는 시간이 많은 멧돼지 특성을 고려하면 야산에서 먹잇감을 찾지 못하자 민가로 내려왔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봄철은 멧돼지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탓에 먹이 섭취가 왕성한 시기지만 이를 충족시켜 줄 만큼 서식지에 음식이 풍부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저지대에 먼저 돋아난 새순이나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를 먹기 위해 멧돼지가 위험을 무릅쓰고 도심으로 들어왔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주 새벽 부산시 기장군의 한 마을 등산로에서도 60대 관광객이 새끼와 함께 있던 어미 멧돼지에게 받혀 팔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3일에는 강원 삼척시 가곡면 동활리의 한 야산에서 약초를 캐던 50대가 멧돼지 습격을 받고 허벅지를 심하게 다쳐 과다출혈로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생태계에서 상위 포식자에 속하는 멧돼지는 한 번에 많게는 10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르기 때문에 최근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과거보다 사람과 조우할 가능성도 덩달아 커진 셈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이 발표한 2015년 야생동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810개 고정 조사구역에서 조사한 멧돼지 밀도는 100㏊당 5마리다.
3.8마리까지 떨어진 2012년을 기점으로 2013년 4.2마리, 2014년 4.3마리로 계속 증가세다.
전문가들이 추정한 야생 멧돼지 적정 개체 수인 100㏊당 1.1마리를 훨씬 웃돈다. 전국 야생 멧돼지 개체 수는 30만 마리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체수는 급증하는 반면 서식지가 위협받으면서 멧돼지들의 먹이활동은 갈수록 어려운 상황이다.
잇단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고, 봄나물에 도토리까지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의 임산물 채취로 먹을거리마저 찾기가 쉽지 않게 됐다.
멧돼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대표적인 야생동물은 고라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중국 중동부에서만 서식하는 고라니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 적색 목록에 '취약' 동물로 지정될 만큼 개체 수가 많지 않다.
유독 국내에서만 안정적으로 서식 밀도가 유지되는 동물이다.
고라니 역시 주요 서식지가 산기슭이나 야산 아래 지역이다 보니 쉽게 도심이나 민가에 출현한다.
특히 먹이 활동을 위해 서식지를 옮기기 위해 도로를 건너는 경우가 많아 로드킬 당하는 사례가 많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2∼2016) 국내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로드킬 사고 1만1천379건(마리) 중 고라니가 차지하는 비율이 88.3%(1만51건)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너구리 633건, 멧돼지 333건, 산토끼 77건, 오소리 113건, 삵 68건, 족제비 29건, 기타 75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월별로는 서식지를 이동하거나 먹이 활동이 활발해지는 봄철에 사고가 집중적으로 몰렸다.
지난해 로드킬 발생 건수인 2천247건 중 5월이 588건으로 월별로는 가장 많았고, 4월에도 224건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도심이나 도로에 잇따라 출현하는 야생동물이 늘어날수록 인간에게도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존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농민들이 정성껏 기른 농산물을 파헤치는 경우가 많아서 멧돼지나 고라니는 사람들로부터 '유해동물'이라는 불명예를 얻은 지 오래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야생동물의 출몰이 잦은 시기, 기동포획단을 운영하고 순환수렵장을 여는 등 야생동물 피해 예방과 포획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연구관은 "멧돼지나 고라니도 자연 생태계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구성원이기 때문에 적정한 마릿수를 유지하도록 조절하고, 먹이 활동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서식지를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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