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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선 때문에 흐린 날에는 한우 초음파검사도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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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선 때문에 흐린 날에는 한우 초음파검사도 못해요"

전국 최다 송전탑 마을에 또다시 송전탑…횡성 부창리의 설움

소 폐사에 암 환자 속출·땅값은 이웃의 3분의 1…마을공동체 붕괴

(횡성=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흐린 날에는 초고압 송전선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측정기 바늘이 흔들려 한우 출하를 위한 초음파검사도 못해요."




강원도 횡성읍 내에서 공근면 가곡리를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산골에서 보기 드문 꽤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횡성한우로 유명한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부창(富蒼)리 '백이벌'이다. 백이벌은 들이 넓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백이평'이라고도 불린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처럼 이곳은 대대로 인심 좋고 효자가 많은 마을로 소문나 한때 200여 가구가 모여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2001년 횡성군 4개 면 14개 리를 지나는 765㎸ 초고압 송전탑 85기 가운데 가장 많은 12기가 부창리 마을 한복판을 관통하면서 풍요롭던 부창리는 하루아침에 생기를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곳에 또다시 HVDC500 송전탑 건설계획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면서 주민들은 폭발 직전의 심정이다.




"저 소리가 들리지요? 꼭 돼지 울음소리 같지요?"

부창리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외지로 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 10년 전 고향으로 귀농한 조병길(54) 씨가 마을창고 앞에서 불과 수십m 떨어진 송전선을 가리키며 대뜸 기자에게 묻는다.

조 씨는 "처음에는 바람이 송전선에 부딪혀 나는 소린 줄 알았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니 바람이 없을 때도 소리가 나고 흐린 날은 특히 심하다"고 말했다.

송전선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불규칙하게 들리는 꺼림칙한 소리에 잠을 설쳐 한전에 물어도 봤지만 "정확히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단다.

워낙 고압 전류라 전기가 흐를 때 나는 소리가 아닌가 짐작만 하고 있다.






뜰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송전탑 아래 넓게 자리 잡은 인삼밭도 눈에 띈다.

대개 검은색 방수포에 덮여 경사지에 있는 인삼밭이 넓은 평지 논 한가운데, 그것도 송전탑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조 씨는 "원래 모두 벼농사를 짓던 땅인데,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고 나서 주민들이 논에 출입하기를 꺼리면서 벼농사보다 출입을 덜 해도 되는 인삼밭으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전탑이 들어선 뒤 주민들이 입고 있는 피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한민국 명품 한우로 인정받고 있는 횡성 한우도 특별한 이유 없이 죽어 나가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대부분 비 오는 날 또는 안개가 끼거나 흐린 날 죽어 초고압 송전선로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 씨의 생후 15~16개월 된 수소도 지난달 말 까닭 없이 쓰러져 3일 정도 먹지를 못하다 끝내 숨졌다.

수의사가 내시경 등으로 진찰한 결과 위산이 분비되지 않는 등 위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우 80두를 키우고 있는 조 씨는 2년 전에도 20개월짜리 소가 병명을 모른 채 숨진 것을 비롯하여 10년 동안 5마리나 폐사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소가 죽어도 돌림병으로 의심을 받을까 봐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조 씨는 털어놨다.




고압선 주변에서 살다가 각종 암으로 사망하는 주민들도 잇따르고 있다.

딱히 고압선 때문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고압선 주변의 암 발생률이 일반지역보다 40% 정도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어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고향을 등지고 이사를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송전탑 때문에 땅값이 떨어져 평균적으로 이웃 마을 땅값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한 데다 내놔도 팔리지를 않기 때문이다.

송전탑이 들어서기 전 부창리는 이웃 마을보다 땅값이 높았으나, 현재 상동리·가곡리는 15만~20만원으로 치솟았지만 부평리는 16년 동안 거의 제자리걸음을 해 평당 5만~6만원에 그치고 있다.




여기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마을공동체가 붕괴했다는 것이다.

조 씨는 "송변전시설주변지역지원법상 보상대상이 선로에서 1㎞까지로 제한되다 보니 같은 마을이라도 불과 몇m 차이로 보상을 받는 집과 받지 못하는 집이 갈려 주민 간 반목과 질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에 부창리 주민들은 16년 전 대다수 주민의 반대에도 송전탑이 마을을 반으로 갈라놓았는데 또다시 그 골을 더욱 깊게 할 수는 없다며 결사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횡성군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횡성환경운동연합, 전국송전탑네트워크는 지난달 21일 횡성문화예술회관에서 초고압 송전탑 건설반대 군민 총궐기대회를 열고 "횡성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송전탑이 세워져 있는데도 또다시 초고압 송전탑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면서 건설계획 백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ryu62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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