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정 60년 넘게 지킨 '구둣방 할아버지' 떠나다
6·25 직후부터 서울대생 구두 고쳐온 양화수선소 대표 하용진씨
"잘 벌어먹고, 잘 있다 간다" 고마움 표시…학생들도 아쉬워해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지난달 31일 서울대 학생회관 건물 뒤에 있는 자그마한 크기의 구둣방 '양화수선소'. 세평 반(11.8㎡) 정도 크기의 이 구둣방을 60여 년간 지켜온 대표 하용진씨는 이날을 마지막으로 정든 학생과 교정에 이별을 고했다.
전북 김제 출신으로 올해 여든다섯인 하씨가 서울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워낙 오래전이라 하씨조차 "60년이 넘었다"라고 기억할 뿐 정확한 연도는 떠올리지 못했다.
한국전쟁 발발 이듬해인 '단기 4284년(1951년)' 11월 열아홉 살의 나이로 입대한 하씨는 3사단에 배속돼 북한군과 싸우다 왼쪽 팔을 다치고 제대했다.
하씨는 "몇 번 죽으려다가 살아났다. 중공군에 포위돼 왔다 갔다 하고… 하여간 지긋지긋했다"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상이용사가 된 하씨는 나라에서 "일자리를 알아봐 줄 테니 할 줄 아는 기술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 "구두수선을 할 줄 안다"고 답했다가 서울대 옛 동숭동캠퍼스에 구둣방을 열었다고 한다.
하씨는 "당시 상이군인들이 좀 행패를 부렸다"면서 "그런 것을 막으려고 정부가 제대하고 밥 벌어먹을 길을 마련해줬는데 그 케이스에 서울대와 인연을 맺었다"고 말했다.
기술은 "입대 전 동숭동캠퍼스 건너 서울대병원에서 구둣방을 하던 매부에게 배웠다"고 설명했다.
서울대가 현재 관악캠퍼스로 옮겨올 때도 함께 따라온 하씨는 이곳에서 다섯 아들을 키우고 결혼까지 시켰다.
하씨가 인생의 터전으로 삼아온 이 구둣방을 정리하는 이유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잔기침을 반복했다.
하씨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구둣방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한 이유다. 학생회관 주변을 지나는 학생 몇몇을 붙잡고 구둣방 위치를 물었을 때 상당수는 "여기 주변에 있는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바로 옆을 지나는 학생들도 정확한 위치를 짚지 못할 정도로 잊히고 있다.
하씨는 "한 때 하루 20만∼30만원을 벌었다"면서 "지금은 하루 2만∼3만원 그렇게밖에 못 번다"고 말했다. 구둣방에 걸린 가격표를 보면 하씨의 가게에서 통굽 갈이는 남자 구두와 여자 구두 모두 1만원이다. 바로 옆에 붙은 '시내 가격표'와 비교해 남자 구두는 5천원, 여자 구두는 2천원 싸다.
하씨는 "바깥보다 싸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학생들 구두 고쳐주는데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부터 구둣방을 위임받아 관리받는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측도 "위임받았을 때도 찾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면서 "매출관리도 따로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씨는 "학생들이 예전보다 운동화를 많이 신는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동숭동캠퍼스 때는 학생들이 군에서 반납한 군화를 동대문시장에서 사 신기도 했다"면서 "굽이 너덜너덜해 고치러 온 학생들이 많았다"고 떠올렸다.
하씨는 "요즘 학생들은 명랑하다"면서 "과거에는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해서 (표정이 안 좋았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요즘 학생들도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하씨는 "그렇지"라며 안타까워했다.
구둣방을 떠나는 다음 날 둘째 손자가 결혼한다는 이야기까지 털어놓던 하씨는 이제는 구둣방을 정리해야 한다며 "많이 와줘서 잘 벌어먹고 잘 있다 간다.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전하고는 짧은 인터뷰를 끝냈다.
그의 구두수선 스타일이 '트렌드'와 잘 맞지 않았다는 불평도 일부 있었지만 하씨를 떠나보내는 학생들은 대체로 크게 아쉬워했다.
졸업생 함모(25)씨는 "학교에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 많아 구두를 고치러 자주 갔는데 할아버지가 떠나신다니 아쉽다"고 말했다. 임모(25)씨도 "친절하셨는데 떠나신다니 안타깝다"고 거들었다.
서울대생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도 "다음 주에 구두·가방을 수선하려 했는데…", "가방을 싸고 깔끔하게 수선해주셨다" 등으로 아쉬운 목소리가 나왔다.
한 학생은 "서울대와 역사와 가장 오래 함께하신 할아버지"라면서 "가끔 성질 부리실 때가 있긴 했지만, 오랫동안 자기 일을 지키며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시다"는 글을 남겼다. 다른 학생은 "또 하나의 역사가 저문다"며 하씨와의 이별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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