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엔 닿지 못했지만"…통영바다를 물들인 윤이상의 '첼로'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윤이상·베토벤 연주로 화합 메시지 전해
(통영=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지난달 31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무대 위에 오른 오케스트라 배열에서는 특이하게도 첼로가 빠져있었다. 첼로는 협연자(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의 솔로 악기로 한 대만 등장했다.
무대 위에서 이 첼로는 홀로 오케스트라에 맞서 외롭게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이날 연주된 곡은 통영 출신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첼로 협주곡.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2017 통영국제음악제'의 개막 공연 작품으로 선정됐다.
이 첼로 협주곡은 윤이상의 자전적 이야기를 첼로의 '독백'에 담아낸 작품으로 잘 알려졌다.
윤이상은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국내에선 줄곧 이념 논란에 시달려왔지만, 나라 밖에서는 동·서양의 음악기법과 사상을 융합시킨 세계적인 현대음악가로 평가받는다.
이번에 연주된 첼로 협주곡도 그의 삶과 독특한 작곡 기법이 고스란히 담겼다.
첼로를 든 알트슈태트와 슈테펀 숄테스가 이끄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오르자 1천300석을 꽉 채운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객석은 숨을 죽였다.
단(單)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첼로와 오케스트라는 어우러지기를 포기한 채 갈등과 대립을 지속하며 무대에서 독특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특히 첼로는 한국 전통 악기인 거문고나 가야금 소리처럼 퉁기는 소리를 내며 오케스트라와 이질적인 색채를 빚어냈다.
첼로는 오케스트라의 선율 사이 사이에서 절뚝절뚝 걷는 모습으로, 안개 낀 통영 바다 위를 헤치고 나아가는 배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동양과 서양, 남한과 북한 그 어느 곳에도 온전히 수용되지 못한 '경계인'으로 살다 간 윤이상의 삶이 낯설면서도 매혹적인 첼로 선율로 펼쳐졌다.
말미에 이르러 첼로는 유토피아를 향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상적 세계를 상징하는 '라'(A) 음에 닿기 위해 첼로는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그 아래인 '솔#'(G#) 음에서 생명을 다한다.
객석은 낯설면서도 독특한 에너지로 가득한 이 곡이 끝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공연을 마치고서 만난 알트슈태트는 "이 협주곡에는 자유와 순수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며 "필사적이고 처절하게 이상향을 찾고 싶어 했던 윤이상 선생의 모습이 첼로 선율로 형상화됐다"고 해석했다.
윤이상의 곡 뒤에는 자유와 화합, 인류애를 담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연주됐다.
그 유명한 합창 선율이 통영 밤바다 위에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결합하도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통영국제음악제는 4월 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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