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인수 가능성은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세계 2위의 낸드 플래시 반도체 업체 도시바(東芝)의 메모리 사업 부문이 매물로 나오면서 그 향배가 관심이다.
누구의 품에 안기느냐에 따라 낸드 플래시 업계의 지형이 크게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 10여개 업체 참여한 듯…"결국 일본이나 미국에 아니겠나"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다. 도시바는 29일 예비입찰을 마감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한국의 SK하이닉스를 포함해 10여곳이 입찰 제안서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또 아이폰을 조립하는 폭스콘의 모그룹인 대만의 홍하이(鴻海)정밀공업과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도 포함된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도시바와 제휴해 사업을 벌이고 있는 웨스턴 디지털(WD)과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테크놀러지가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굴기(堀起)'를 선언한 중국의 대형 반도체 제조업체 칭화유니그룹(紫光集團)도 참여가 유력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또 일본 아사히신문은 독립계 벤처캐피탈(VC) '일본 테크놀로지파트너스'가 일본 기업 연합에 의한 입찰 제안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때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일본의 민관 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나 정부계 정책투자은행은 인수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정부와 재계의 기류를 보면 미국계 기업 또는 일본 자본의 인수가 유력해 보인다. 낸드 플래시라는 첨단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되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 또는 일본과 미국 기업의 연합에 도시바 메모리를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도시바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미 입찰 시작 전부터 무게추가 몇몇 기업들에게로 기울어져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누가 얼마를 써내든 결국 일본 또는 일본-미국 연합에 넘어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관측의 연장 선상에서 보면 웨스턴 디지털은 유력한 인수 후보다. 실제 요미우리 신문은 "관계자들 사이에는 도시바의 일본 욧카이치(四日市) 공장에서 반도체를 공동생산하고 있는 웨스턴 디지털이 유력하다는 설이 부상했다"며 일본과 미국의 연합 세력화, 즉 '미일(美日) 연합' 가능성을 소개했다.
◇ 도시바가 절실한 SK하이닉스…예비입찰 통과가 1차 관문
낸드 플래시 시장은 SK하이닉스로서는 반드시 잡아야 할 시장이다. 정체된 D램 시장과 달리 낸드 플래시 시장은 당분간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2015∼2020년 낸드 플래시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CAGR)을 45%로 전망했다. 같은 기간 D램의 성장률이 25%로 예상된 것과 대비를 이룬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4∼5위권의 플레이어다. D램 분야에선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지만 낸드의 역량은 그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단숨에 2위로 도약한다. 작년 4분기 낸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37.1%로 1위였고, 도시바가 18.3%로 2위, SK하이닉스는 9.6%로 5위였다. 산술적으로는 도시바와 SK하이닉스가 합쳐지면 점유율이 27.9%로, 1위와의 격차를 확 좁히며 2위로 올라선다.
도시바는 SK하이닉스에 낸드 시장의 메이저로 거듭날 수 있는 도약대인 셈이다.
변수는 도시바와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되느냐다. '1+1=2'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2013년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러지가 일본 D램 업체 엘피다를 인수했을 때 양사의 합산 점유율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에 시장 2위 자리를 내주는 데는 그로부터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물론 낸드 플래시 업계에서 도시바의 위상은 강력하다. 낸드 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낸드의 원조이자 3차원(3D) V-낸드 적층기술을 처음 선보인 것도 도시바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다만 도시바의 기술력이나 제조공정, 소재 등이 SK하이닉스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를 확인하려면 도시바에 대한 실사에 참여해야 한다. 실사 자격은 예비입찰을 통과한 업체에만 주어진다. SK하이닉스로서는 일단 예비입찰이라는 1차 관문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이 실사를 통해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의 실익이 크지 않다고 보면 인수 절차를 중단할 수도 있다.
SK로서는 도시바의 제조·공정 기술 수준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만으로 소득이 될 수도 있다.
SK하이닉스의 독자 인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SK하이닉스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재무적 투자자(FI)로 끌어들였는지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일본의 FI를 포함한 글로벌 FI들을 투자자로 모아 입찰 제안서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는 앞으로 예비입찰을 통과한 업체를 상대로 실사 기회를 준 다음 본입찰을 거쳐 6월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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