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욱의 사시사철] 靑 소통, '거리줄이기'가 능사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5.9 대선' 이후 청와대가 많이 달라질 것 같다. 후보마다 청와대 이전이나 재배치 공약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박근혜 정부의 '불통 구조'도 한몫했을 법하다. 최측근 수석조차 재직 1년여 동안 제대로 대면보고를 한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다. '세월호 7시간'도 그 연장선에 있다. 세월호 당시 안보실장이었던 김장수 주중대사는 배가 침몰하는 긴급 상황에서 대면이 아닌 서면 보고를 택했다. 통상 보고서를 직접 전해야 할 경우엔 "뛰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갔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비서동(위민관) 간 거리는 500m나 된다. 보통 걸음으로 걸어가면 10분 정도 걸린다. 대통령 관저까지는 이보다 더 먼 600m다. 긴급 상황에선 대면보고가 늑장보고가 될 수밖에 없는 게 청와대 구조다. 소통은 거리와 반비례한다는 게 통설이다. 15m, 25m가 기준이 된다는 학설도 있다. 15m 이내에 위치하면 소통이 활발해지는 반면 25m밖에 있으면 현격히 저하된다고 한다. 청와대 본관과 비서동은 이보다 25~33배나 먼 거리다. 이러니 소통이 잘 될 턱이 없다. 그 장거리 공백을 채운 것이 비선 아닐까 싶다. 청와대 핵심인 대통령 비서실장도 그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권력이 대통령과의 거리에 의해 좌우된다는 얘기는 상식에 속한다. 가까우면 실세고 멀면 실세가 아니다.
외국 정상들의 거처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대통령이나 총리 집무실이 비서진 근무실과 한 데 모여 있어 급하면 1분 이내에 얼굴을 맞댈 수 있게 돼 있다. 미국 백악관의 중심은 서관인 웨스트윙이다. 1, 2층에 대통령 집무실과 부통령 집무실, 비서실장실, 안보보좌관실, 상황실,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 기자실 등이 밀집해 있다. 몇 걸음만 떼면 대통령과 참모들이 곧바로 만날 수 있다. 영국 런던의 다우닝가 10번지 소재 총리 관저도 같은 건물 3개 층에 모두 몰려 있고, 독일이나 일본도 비슷비슷하다. 우리처럼 대통령 집무실 따로, 관저 따로, 비서동 따로인 곳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청와대 구조가 지나치게 권위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참모 간 물리적 거리가 줄면 심리적 거리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거리줄이기'가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각 당 대선 후보들의 공약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내놨고, 안희정 충남지사는 아예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을 내걸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집무실을 비서동으로 옮기겠다고 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세종시에 제2 집무실을 두겠다고 약속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대통령 집무실을 외부 인사에게 공개해 소통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쪽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런 공약들이 잘 지켜질지, 공약(空約)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행이 쉽잖은 측면이 있어서다. 세종시 이전의 경우 사실상 행정수도 이전을 뜻할 수 있는데, 이런 의미라면 헌법개정 사항에 속한다는 게 헌법재판소 견해다.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선 통상적인 개헌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설령 대통령 집무실을 세종시나 서울청사로 옮긴다고 해도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집무실 공간 확보를 위해선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기존 건물을 활용해야 하는데, 신축에는 많은 시일이 소요되고 큰 예산이 투입되는 문제가 있다. 기존 건물을 쓴다 해도 먼저 입주해 있는 정부 부처나 기관 등을 재배치하는 작업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당연히 대통령 경호에도 애로가 발생한다. 서울청사에 입주할 경우 경호에 필요한 적정 거리 확보가 어려운 것은 물론 청사 내 다른 공무원들과 인근 시민들의 불편도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는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동과 합치는 식의 청와대 경내 해결 방식이 가장 무난한 방안으로 보이긴 하나 이도 적지 않은 예산 지출은 감수해야 한다. 실제 이명박 정부도 출범 초 청와대 공간 재배치를 시도했으나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소통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는 국회의 거부에 따라 무산된 적이 있다. 맞는 말이긴 하다. 거리만 줄인다고 능사가 아니다. 소통하겠다는 열린 마음 없는 거리줄이기는 서로에게 피로감만 안겨줄 뿐이다. 소통이 결코 쉬운 게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권력과 소통은 본질에서 잘 부합하지 않는 이질성이 있기도 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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