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지주사 보류 배경은…총수 부재·여론 고려한 듯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삼성전자[005930]가 24일 주주총회에서 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당장 실행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부회장의 구속은 회사의 미래 방향성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에 대한 결단을 내릴 최종 의사 결정권자의 부재를 뜻한다. 총수가 없는 상태에서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민감하고 복잡한 사안에 대해 결단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 구속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한 갈래였던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의 편·불법과 관련돼 있다는 점도 지주사 전환 추진의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양사의 합병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범인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이런 의혹이 제기되면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다. 그 와중에 또다시 지배구조 개편에 시동을 걸 경우 비판적 시각이 비등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은 지배구조와 경영의 투명성 제고 외에도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깊숙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또 공교롭게도 정치권에서는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에 불리한 방향으로 상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법인의 인적분할 때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하는 것을 막는 상법 개정안 등이 발의돼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자사주의 마법'으로도 불리는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은 삼성전자를 삼성전자 홀딩스(지주회사)와 삼성전자 사업회사로 쪼갤 때 삼성전자 홀딩스가 받을 사업회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행 상법은 자사주에 대해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회사가 인적분할을 하면 지주회사에 자사주 비율만큼 사업회사 지분이 할당된다.
이때 지주회사에 주어진 사업회사 주식은 더 이상 자사주가 아니기 때문에 의결권이 살아나고, 지주회사로서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사업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 같은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을 막자는 것인데 이런 정황 속에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할 경우 '자사주를 써먹기 위해 법 개정 전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른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로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탈법적으로 진행됐다는 의혹과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또 꼼수를 쓴다'는 시선에 맞닥뜨려야 한다"며 "삼성전자로서는 시기적으로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순환출자 해소나 지배구조의 투명화, 오너의 지배력 강화 등을 위해선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이 현실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권 부회장이 이날 주총에서 "지금으로써는 실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며 "모든 검토가 끝나면 그 결과를 공유하겠다"고 여지를 남긴 것도 이런 맥락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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