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6.5에 맞춘 현 국내 원전 내진설계 문제 없어"
전문가들 "한반도에서는 지진 예측·연구 어렵다" 토로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규모 6.5 지진에 견디도록 한 현재의 국내 원자력발전소(원전) 내진설계 기준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23일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주최로 열린 '2017 원자력 안전규제 정보회의' 지진 관련 특별세션에서 "지난해 9월 발생한 5.8 규모의 경북 경주 지진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원전 설계 기준은 충분하다"며 이렇게 밝혔다.
2015년 운영을 시작한 신고리 3호기(지진값 0.3g·규모 7.0)를 제외한 국내 모든 원전은 지진값 0.2g(규모 6.5)에 대비해 지어졌다.
정부는 지난해 경주 지진을 계기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핵심설비를 2018년 4월까지 0.3g(규모 7.0) 수준으로 보강하고, 건설 예정인 원전 핵심설비는 0.5g(규모 7.4) 수준으로 확보하겠다는 내용의 '지진방재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교수는 "0.3g로 기준을 강화하면 안전하겠지만, 단층이나 지진 증거에 기반해서 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며 "규모 5.8의 지진이 한반도 역사상 최대 규모는 맞지만 0.2g의 내진설계 범위 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경주 지진의 발생 깊이는 14∼15km 정도로 지표면이 아닌 비교적 깊은 곳에서 발생했고, 단층의 찢어진 길이가 4∼5km 정도로 짧아 피해가 크지 않았다.
그는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한 이후 비전문가의 의견이 넘쳐나는 언론 보도들이 많아 혼란스러웠다"며 "현재까지 관측된 지진 데이터 등을 토대로 볼 때. 0.2g라는 지진값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세명대 김준경 교수도 "경주에서 난 규모 5.8 지진은 학술적으로는 규모 5.4로 보는데, 이는 일본에서는 2주에 한 번 날 정도로 빈도가 잦은 것"이라며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갖고 얘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의 지진 예측과 연구에 대한 어려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판 경계에 있는 일본은 지진 빈발지역이라 관측자료가 많지만 우리는 지진 데이터가 없어 예측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활성단층 조사에 대해서도 "비가 많이 오는 우리나라는 퇴적이 되기도 전에 깎여 나가 건조지역인 미국과 달리 단층 기록이 쌓이지 않아 조사가 어렵다"며 "GPS 자료를 이용해 지진이 나기 전과 후 한반도의 지표 변형을 분석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승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연구센터장도 "경주 지진을 비롯해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은 지표 위가 아닌 심부에서 발생해 지질조사만으로는 파악이 어렵다"며 "탄성파 탐사 등 물리탐사 기법을 통해 숨어 있는 단층을 추정하는 기술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그동안 우리나라는 지진 위험이 적었기 때문에 연구 인력이나 인프라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경주 지진을 계기로 일본, 미국처럼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단층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경대 강태섭 교수는 "국내에서 경주 지진 정도의 규모를 경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며 "규모 2.0 이하의 미소 지진 데이터를 오랫동안 고밀도로 관측한다면, 지진이 어디에서 일어날 지 정도는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 토론이 끝난 뒤 방청석 질문이 이어졌지만, 현재의 원전 설계 기준이 '최선'이라는 규제기관의 태도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청중이 '원전에 위험이 있는 데도, 원안위는 기술적인 대책이 없다며 원전에 대한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데, 맞느냐'고 묻자 김인구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부원장은 "미지의 세계에 대처한다고 위험이 제로가 되지는 않는다"고 일축했다.
앞서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 등은 원전 밀집지역에 신규 원전에 대한 허가 심사를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다수의 원자로 연계성을 고려한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를 하는 내용의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빛원전 인근에 살고 있다는 주민 이하영씨는 "전문가들이 너무 자신의 학문에 대한 신념을 갖고 계신 것 같다"며 "소통을 하려는 태도인지 유감스럽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날 원자력안전규제 정보회의에는 김용환 원자력안전위원장을 비롯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한국원자력안전재단 관계자 등 1천500명이 참석해 원자력 안전규제 정책 방향, 지진 대비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규제 현황과 개선 대책 등을 논의했다.
이틀째인 24일에는 원자력 안전정보 공개, 원전 해체, 사고관리, 방사성폐기물 관리 등 13개 분과별 심층 토론이 진행된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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