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치] "열심히 일했는데, 5만원 호텔디저트 사치 정도는 부려야죠"
"샤넬 가방 못사도, 샤넬 립스틱 10개 구입 능력은 돼요"
"적은 돈으로 큰 만족"…'작은 사치' 즐기는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서울 강서구에 사는 직장인 임 모(29·여) 씨는 최근 호텔에서 먹는 디저트에 푹 빠졌다.
2주에 한 번씩은 '애프터눈 티' 세트를 즐기기 위해 서울 도심 특급호텔을 찾는다. 가격은 한 세트에 5만 원정도로 디저트치고는 상당히 비싸고 특별히 맛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임 씨는 돈이 아깝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애프터눈 티 세트를 먹는 2~3시간 동안은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 같고 음식이 담겨있는 예쁜 3단 접시와 티포트 등 다기도 예뻐서 눈 호강 하기에도 좋다.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올릴 수 있다.
임 씨는 특급호텔들이 겨울과 봄 사이 진행하는 딸기 뷔페에도 매년 가고 있다. 가격은 4만 원 이상으로 저렴하진 않지만, 딸기를 이용한 디저트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에 끌려 매번 찾는다.
임 씨는 "단순히 디저트를 먹어 일차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여유로운 시간과 서비스를 돈을 주고 산다고 생각한다"며 "열심히 돈을 벌었으니까 이 정도 사치는 해도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 최 모(30·여) 씨는 명품 브랜드 립스틱과 니치향수(소수만을 위한 프리미엄 향수)를 수십 개 갖고 있다.
립스틱은 4만 원대의 가격으로 명품 화장품 중에서는 가장 저렴해 여러 개 사도 부담이 없고 하나씩 모아가는 재미도 있다. 다른 향수보다 향 종류가 많고 독특한 니치 향수는 뿌리는 것만으로도 남과 차별화되는 것 같다.
최 씨는 "샤넬 가방은 부담스러워서 못 사지만 샤넬 립스틱은 10개도 살 수 있다"며 "명품 가방이나 신발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 같은 브랜드의 립스틱을 사는 것으로 우선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임 씨, 최 씨와 같이 '작은 사치'(과하게 비싸지 않은 것에 자기만족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트렌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백화점 업계는 작은 사치를 즐기는 사람들을 겨냥해 식품관에 수입 프리미엄 디저트 판매장을 늘리고 있으며 호텔업계도 딸기 뷔페에 이어 망고 뷔페까지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이 계속되면서 소비 트렌드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요시하는 성향과 가성비보다도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즐기는 성향 등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남들과 차별화된 제품을 사면서 사치를 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 해서 작은 사치 트렌드가 생겼다고 분석한다.
사치는 하고 싶은데 제한된 경제적 자원으로는 '작은 사치'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제품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소비자들도 차별화되는 제품을 사면서 욕구 충족을 한다"며 "대표적인 작은 사치인 디저트의 경우에도 남과 차별화되는 제품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디저트는 일단 한 끼 식사보다는 저렴하므로 비싼 제품이라도 사 먹을 수 있다"며 "비싼 디저트를 먹으면서 소비자는 자부심, 만족감 등을 느끼고 효용을 극대화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치를 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다"며 "그러나 경기가 어렵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크게 비싸지 않으면서도 남들에게 보여줄 때 그 돈 가치 이상을 하는 것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고급 디저트 같은 경우 돈을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도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고 자기만족을 준다"고 부연했다.
작은 사치를 하는 사람들이 주로 20~30대의 젊은 세대라는 점에 주목해 이 현상을 분석하는 의견도 있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자라면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에 익숙하다"며 "성인이 돼서도 자신을 즉시 만족하게 해줄 것들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그러나 경제 상황이 나쁘다 보니 큰돈 대신 적은 돈을 쓰면서 만족하게 되는 것"이라며 "1년을 저금해서 비싼 것을 사기보다는 기다리지 않고 '작은 사치'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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