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나른한 봄, 캠핑으로 초대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캠핑은 낭만이다. 텐트 밖에서 소곤거리는 자연의 소리에 감성은 금세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도심에서만 자란 아이들은 또르르 굴러다니는 다람쥐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신비에 푹 빠져든다. 해가 저물고 가족과 즐거운 한 끼 식사를 야외에서 하다 보면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 하나둘 랜턴이 꺼지고 별빛만이 캠핑장을 비출 때면 내 마음도 고요히 잠들고 별을 세던 아이들의 눈꺼풀도 내려앉는다.
그간 텐트에서 잠자는 것을 끔찍하게 여긴 도시인도 한두 번 지인을 따라나서면 캠핑이 벌레를 만지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쩌면 어릴 적 잃어버렸던 자유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 이젠 '야영의 시대' 아닌 '캠핑 시대'
'야영'이란 단어가 '캠핑'으로 바뀐 것은 단순히 한자어에서 영어 단어로 변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직행버스에 배낭을 싣고 다니며 친구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새우던 과거의 '야영'이 이제 자동차에 텐트를 싣고 다니며 즐기는 가족 단위 오토캠핑으로 문화가 바뀐 것이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럭셔리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숲에서 하룻밤을 보내길 좋아하는 것일까. 대답은 '노마드(Nomad)적 삶의 추구'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도시에서 자라난 가장들은 공부에 대한 압박이 심했던 것 같다. 금이야 옥이야 대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다른 것보다 공부만 하기를 강요받는 삶을 살아왔다. 얼마나 공부를 강요했으면 산에 가지 말고 공부할 것을 강요하는 대중가요마저 나왔을까. 윤시내의 '공부합시다'란 노래가 한때 히트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턱 고이고 앉아 무얼 생각하고 있니 빨간 옷에 청바지 입고 산에 갈 생각하니…안돼! 안돼!…네 눈앞에 노트가 있잖니. 열심히 공부하세"
대체 빨간 옷에 청바지 입고 산에 갈 생각하는 것이 왜 죄악이 됐을까. 열심히 공부한 덕분인지 도시 한 쪽에 버티고 서는 법을 터득한 이 시대의 가장들은 이제 그 '공부합시다'란 대중가요가 자신을 옥죄어온 하나의 구호임을 깨달았다. 진정한 행복은 직장과 집을 쳇바퀴처럼 오가는 삶에 있지 않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현실은 힘들지만 가족과의 삶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머리 뒤에 꽂힌 플러그를 뽑듯, 한번 플러그를 뽑은 그들은 진짜 세상이 주는 그 자유를 잊지 못하게 된 것이다. 텐트 하나 제대로 치지 못해 끙끙대던 가장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무엇이든 쓱싹 해치우는 맥가이버가 될 수도 있다. 즉석요리의 변통일지 몰라도 멋진 요리사로 변신할 수 있다. 방에 처박혀 게임하기 바쁘던 아이들과 한 텐트에서 잠을 자며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진짜 가족이 된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자녀가 자연이 주는 감성에 눈을 뜨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흐뭇하다.
◇ 달라진 캠핑 장비…'미니멀'이 대세
미니멀(Minimal)한 삶이 대세가 된 듯한 요즘이다. 오토캠핑이 큰 인기를 얻었고 더불어 캠핑 장비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 간단한 텐트를 들고 캠핑장을 갔던 초보 캠핑족들은 오토캠핑장을 점령하고 있던 고래 등 같은 캠핑 장비에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더 크고, 더욱 넓은 텐트를 마련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 시절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장비에 치여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결국 간단한 장비를 들고 다니는 캠핑이 최고라는 결론에 이르고야 만다. 이른바 미니멀 캠핑의 태동이다.
미니멀이란 최소한의 장비로 가장 자연에 가까이 가자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국립휴양림 캠핑장의 경우 큰 텐트를 갖고 가면 낭패를 당하기 쉽다. 대부분 가로·세로 각각 3m 남짓한 작은 덱이 설치된 곳이 많다. 자연은 거창한 장비를 들고 가는 자들에게 즐길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작은 텐트를 마련하도록 하자. 그렇다고 소위 '돈질'을 해서 값비싼 외국산 백패킹용 텐트를 사라는 것은 아니다. 국산 중소기업 제품이 오히려 훨씬 뛰어난 경우가 많다.
간단한 돔 텐트와 타프(그늘막), 의자와 테이블, 침낭만 있으면 당장 떠날 수 있다. 버너가 없다면 집에 있는 휴대용 가스버너를 사용해도 좋다.
아름다운 봄날을 만끽할 수 있는 캠핑장 두 곳을 추천한다.
▲ 하동 평사리 캠핑장…삶이 소설이 되고 소설이 삶이 되는 곳
봄의 전령사 매화꽃을 실컷 볼 수 있는 청매실농원이 있는 하동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하얗게 핀 매화꽃과 그 뒤로 펼쳐진 섬진강. 평사리 캠핑장은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게 하는 이 멋진 풍경이 있는 청매실농원 가까이에 있다. 산수유꽃이 만발하는 구례와도 지척이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 들녘에 있는 최참판댁과 화개장터에서는 악양 들판 걷기와 차(茶)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곡성, 구례, 하동을 거쳐 흐르는 강줄기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조성된 야영장은 가로등마저 운치를 더한다.
섬진강변의 캠핑장에는 산수유꽃이 핀 곳이 명당이다. 아침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섬진강변, 폭신폭신한 은모래사장을 밟으며 음이온을 듬뿍 받는 경험도 꼭 하시길. 섬진강변에 하늘거리는 억새도 빼놓지 말고 꼭 보길 권한다.
야영장 중앙에 샤워장, 개수대, 화장실이 모여 있다.
[Basic Information]
주소 :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섬진강대로 3145-1
예약 : 하동군청 홈페이지
이용 요금 : 오토캠핑 2만4천원, 카라반캠핑 3만원
유의 사항 : 국도변이라 차량 소음은 감수해야
☎ 055-883-9004
▲ 청산도…바쁘게 살아온 인생이 보이는 섬
슬로길로 유명한 청산도는 그 어감만큼이나 분위기가 청량하다. 섬을 일주할 수 있게 조성된 슬로길은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맛보는 여행을 할 수 최적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전국 문화생태 탐방로 10곳에 포함되면서 '청산유수' 슬로길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한층 명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그야말로 천천히,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시골길을 걷노라면 그간 바쁘게 살아온 인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청산도는 영화 '서편제'의 배경이 될 만큼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매년 4월이면 유채꽃이 만발해 섬을 노랗게 물들인다. 제주도와는 또 다른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아름답고 고요한 섬이다.
청산도항(도청리) 앞에 있는 청산도 표지석에는 청산도가 푸른 산이라는 뜻이지만 조선 중기 이전에는 선산도(仙山島)라 표기됐다고 적혀 있다. 순우리말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의 변형이라고 한다.
완도에서는 45분가량 걸린다. 청산도는 도착하자마자 우리에게 바쁘게 가지 말라고 알려준다. 부두를 벗어나자마자 느림의 종이 있어서 한 템포 쉬어갈 것을 권한다. 청산도는 시내버스를 이용해 여행해도 좋다.
영화 '서편제' 촬영지 입구에서는 마을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옛날 힘깨나 쓰던 양반이라면 딱 세트장 위치에서 먼바다를 바라보고 싶었을 것이다. 가까운 쪽이 당리(당락리·堂洛里), 먼 쪽이 읍리(邑里) 마을이다. 영화 '서편제'에서 한국 영화사상 가장 긴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서편제 세트장에서 왼쪽으로 멀리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이 있다.
청산도에는 진산, 신흥, 지리 등 해수욕장이 세 곳 있다. 이 중 지리해수욕장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진산과 지리 해수욕장에서는 캠핑도 가능하다.
[Basic Information]
주소 : 전남 완도군 청산면 신흥리 22
홈페이지 : www.wando.go.kr
가는 방법 : 완도여객터미널에서 하루 5편 운항한다. 페리 운임은 성인 기준 편도 7천원. 완도에서 청산도로 갈 때는 터미널 이용료 700원이 추가된다. 차를 가져갈 경우 도선료는 중형승용차 기준 왕복 5만원(운전자 뱃삯 별도). 청산농협 ☎ 061-552-9388 완도여객터미널 ☎ 061-552-0116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4월호 [캠핑을 떠나자]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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