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위기를 기회로] 4박5일 韓관광에 30만원 초저가…'쇼핑만 7번'
'덤핑' 한국관광상품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한 '체험기'
"한국상점 중국인 매출 10~15% 중국 여행사 수수료로"
(서울=연합뉴스) 유통팀 = 중국 베이징(北京)에 사는 3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인터넷에서 4박 5일짜리 한국행 패키지 여행상품을 보고 저렴한 가격에 끌려 결제버튼을 눌렀다.
가격은 1천900위안(RMB), 한화로는 31만 원에 불과했다. 서울과 베이징 간 왕복 항공권 요금(약 30만 원)을 고려하면 사실상 서울에서의 숙박, 식사, 교통비 등은 '공짜'나 다름없는 '초저가' 관광상품인 셈이다.
마침내 여행 시작일인 지난해 5월 23일, A 씨를 포함해 같은 상품을 구매한 100여 명은 오후 8시 30분에 한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A씨가 내린 곳은 인천이나 김포공항이 아니라 청주공항이었다. 서울 근교 공항 대신 지방 공항을 이용하면 항공료를 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4박 5일짜리 일정이었지만, 청주에 저녁 늦게 도착해 서울 3성급 호텔로 이동하느라 첫날을 그냥 날렸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됐다. 관광버스로 이동한 첫 행선지는 남산 한옥마을과 남산타워였다.
A 씨는 남산타워에 올라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지만 정작 가이드는 남산타워 앞에서 사진 찍을 시간만 줬을 뿐이었다. 남산타워에 올라가려면 입장료 1만 원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남산을 방문한 뒤에는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었다. 삼계탕 국물은 너무 묽었고 닭 크기도 너무 작아 밥을 먹은 것 같지도 않았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인삼과 화장품을 파는 상점으로 이동했다.
대부분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점원들은 한국산 고려인삼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 '직접 먹어봤다'는 등의 말로 구매를 권했다. 가이드들까지 끊임없이 '그 제품 참 좋다'는 추임새를 넣었다.
A 씨 일행 중에는 이 매장에서만 100만 원어치의 제품을 산 사람도 있었다. 100명이 평균 50만 원어치만 샀다고 해도, 이 인삼 판매점은 단체여행객 한 팀을 통해 5천만 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화장품 상점에서도 점원들의 호객행위는 이어졌다.
A 씨도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 화장품 브랜드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상점에서 보는 제품들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가격도 수십만 원을 호가했다. 한 점원은 어떤 화장품을 열심히 '삼성 화장품'이라고 소개했다. A 씨는 한국의 대기업 삼성이 화장품까지 만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삼성의 인지도가 높다는 점을 이용, '삼성화재 보험에 가입된' 화장품을 '삼성 화장품'으로 속여 파는 것이다.
그 뒤에도 쇼핑은 이어졌다. 면세점을 거쳐 김을 판매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날 구경한 한국의 관광지는 '광장시장'이 전부였다.
셋째 날 오전에는 청와대 사랑채,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을 방문했다. 청와대 사랑채와 민속박물관 입장은 무료이고, 경복궁 입장료는 3천 원에 불과하니, 결국 이날에도 입장료가 비싼 관광지는 엄두도 못 낸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A 씨 일행을 인솔한중국인 가이드는 경복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오후에는 다시 쇼핑 일정이 이어졌다. 면세점 두 곳을 연달아 방문했다.
'자유일정' 넷째 날에는 매장에 끌려다니는 일은 없었지만, 오히려 A 씨는 더 막막했다. 유명 관광지를 가려면 입장료나 교통비 등으로 추가 비용을 써야 했고, 그렇다고 또다시 쇼핑에 나서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5일째, 일정의 마지막 날에도 쇼핑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오전에는 가로숫길을, 오후에는 명동에 있는 면세점과 명동 쇼핑 거리 일대를 돌아봤다. A 씨는 이곳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결국, A씨는 4박 5일의 한국 체류 기간에 무려 7번 이상의 쇼핑 일정을 소화했다.
항공료 정도에 불과한 금액에 4박 5일 여행이 가능한 한국관광상품 가격의 비결도 이 과도한 쇼핑 일정에 있다.
중국 여행사 입장에서는 한국상점에서 판매분의 15~20%씩 주는 수수료로 손해를 메우고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점에서 가이드를 통해 수수료를 전달하면 가이드와 여행사가 다시 이 돈을 나눠 가지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덤핑 관광이 중국 여행사, 한국 내 중국인들끼리 '나눠 먹기'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중국 여행사가 여행객을 모집해서 한국으로 보내면 한국에서 화교들이 운영하는 여행사들은 이들을 받아 여행 일정을 진행한다. 가이드도 중국인, 이들이 가는 인삼 상점, 화장품 상점의 직원들도 상당수 중국인이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한국 업체가 관여하지 않는데도 결국 덤핑 관광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만 나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한·중 정부도 중국인의 한국 덤핑 관광을 근절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며 "이번 중국의 한국 여행상품 금지라는 위기를 기회 삼아 업계의 자정 노력과 단체 관광객이 아닌 중국인 개별 관광객을 겨냥한 마케팅이 필요하다"이라고 강조했다.
dy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